미츠이는 현관문 밖에 서있는 남자 아이를 내려다보며 혼란에 빠져있었다.  아이에게서 건네받은 손에 쥔 편지지ㅡ라고하기엔 그냥 공책을 쭉 찢은 것이었지만ㅡ를 꾹 움켜쥐었다. 
미츠이를 올려다보는 갈색의 곱슬머리의 그 아이는 어딘가 불안함을 품은 뚱한 표정으로 마주보다가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가방끈을 움켜쥔 작은 손이 가늘게 떨리는 것이 보였다. 눈치가 빠른 아이구나. 약간의 죄책감과 계속 여기 세워두는 것도 뭐하기도 해서 걸음을 옆으로 옮겨 비켜서며 안으로 들어오라는 제스쳐를 했다. 

[그...저기. 일단 안으로 들어올래?]
[......감사합니다]

아이는 꾸벅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고는 손에 든 작은 캐리어를 현관 한켠에 세워두고 신발을 벗어 가지런히 정리하고 집 안으로 들어갔다.  
작은 뒷모습을 보며 미츠이는 꾸깃해진 종이를 다시 들여다보았다.

『같이 살던 여자가 버리고 간 앤데 니가 좀 키워주라』

볼펜으로 갈긴 한 줄의 메세지에 너무 많은 것이 담겨있었다. 같이 살던 여자? 이 전언을 보낸 인간은 이 메세지를 받기 전까지 미츠이의 연인이었다. 평소에도 미츠이는 똥차 컬렉터라고 불려왔던 터라 그 인간이 쓰레기 라는건 그닥 놀랍지도 않았지만 이 정도 일줄은 상상도 못했다. 양다리도 모자라 자식을 유기까지해? 이런 동물 욕을 갖다붙이기에도 동물한테 미안해야할 새끼를 봤나. 종이를 갈갈이 찢어버리려다가 아이 눈도 있고 해서 참았다. 속에서 끌어오르는 불길도 일단 집어삼키며 거실 입구에 서서 두리번 거리는 아이에게 다가갔다. 웃으며 말했다.

[너 이름이 뭐니?]
[미야기...료타요]
[그렇구나. 그럼 미야기 저 소파에 앉아 있을래? 난 잠깐 전화 한 통만 하고 올게]
[네]

미야기가 말한대로 소파에 가서 앉는 것을 보며 미츠이는 2층으로 올라갔다. 손님용 방으로 들어가 문을 닫고 핸드폰을 열어 단축키를 눌렀다. 몇 번 신호음이 가더니 저쪽에서 전화를 받았다. 

[미츠이냐? 애는 잘 도착했지?]
[야이 미친 새끼야!!!! 이게 대체 뭔 개소리야??!]
[걔가 메모 안주든?]
[시발새끼야 니 자식이잖아! 인간이면 끝까지 책임져야지!! 그러고도 니가 인간이냐???]
[내 자식 아니고 걔 애미년이 도망가면서 버리고 간거야~ 너네집 부자잖아. 불쌍하다 생각하고 키워. 아니면 너도 걔 고아원에다가 버리든가? 암튼 나 바쁘니까 끊는다]
[야!!!! 잠깐 뭘 끊어?!  야!!!!]

끊어진 폰에다 대고 온갓 욕을 퍼붓다가 씩씩대며 침대에 주저앉았다. 벼락맞아 죽을 것들. 저 어린 애한테 대체 무슨 짓을...어금니를 꽉 깨물며 분노에 떨리는 손을 꾹 움켜쥐었다. 오늘 처음 본 아이때문에 이렇게까지 화를 내는 것도 좀 오버인가? 하는 생각도 잠깐 들었지만 아니 이건 인간으로서 당연히 느낄 수 있는 정당한 분노다! 라고 결론지었다.
미츠이는 짧은 머리를 복복 긁으며 앞으로 어떻게 해야할지 고민에 빠졌다. 어차피 남은 방도 몇 개있고 한 명 더 들어와사는건 큰 문제는 아니었지만 저 어린애를 제대로 케어할 수 있을까? 아직 어린데 그래도 생판 남보다는 쓰레기같은 부모라도 곁에 있는게 저 아이에게 좋은게 아닐까? 사회복지과?같은데 연락해야하나?
이제 25세인, 심지어 게이인 미츠이에게 육아는 완전히 미지의 세계였다. 하아아ㅡ단전에서부터 올라오는 한숨을 길게 내뱉으며 손바닥으로 얼굴을 수차례 쓸었다.
일단은. 저 아이 미야기랑 얘기를 해보자.

푹신푹신하게 하체를 감싸는 소파의 감촉이 신기해서 미야기는 엉덩이를 들썩이며 넓은 거실을 둘러보았다. 난생 처음보는 대형TV와 커다란 스피커, 바닥에는 보드라운 러그가 깔려있는 거실은 아이가 봐도 부잣집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공기에서도 뭔가 좋은 향기가 나는 것 같았다.
이 집 주인을 떠올렸다. 현관문을 열고 나온 남자를 처음 봤을 때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잘생겼다.. 였다. 그다지 긴 인생
을 살아온 건 아니지만 지금까지 본 사람들 중에 제일 잘생긴 사람이었다. 하지만 처음 마주쳤을 때의 그 신묘한 얼굴과 쓰레기에게서 받은 메모를 받아들고 확인할 때 잔뜩 구겨지던 표정을 떠올리자 심란해졌는지 움직임을 멈추고 고개를 떨구었다. 역시 나가라고 하는걸까? 이제 정말 갈 곳이 없는데. 결국 고아원으로 가게되는건가. 눈시울이 뜨거워졌지만 입술을 꼭 깨물고 참았다. 이런 일 한 두번도 아니잖아. 아직 울 때가 아냐.

저벅저벅 발소리와 함께 2층에서 미츠이가 내려왔다. 미야기는 조용히 이쪽으로 다가오는 그를 응시했다. 미츠이는 소파에 앉아 있는 미야기 앞에 한 쪽 무릎을 꿇고 앉아 눈높이를 맞추었다. 조금 멋쩍은 표정으로 머뭇거리며 입을 열었다.

[아저씨, 아니 형이...? 아무튼 솔직히 내가 지금 좀 너무 갑작스러워서 많이 당황스러워. 미안해. 일단은 이 집에서 지내도 괜찮겠니? 너네 어머니나 그 쓰ㄹ... 아니 네 양부한테는 어떻게든 다시 연락해볼게]

아무런 잘못도 없는 남자가 이 사태의 관계자 중에서 가장 미안한 얼굴로 쩔쩔매는 모습이 미야기에게는 너무 이상하게 보였다. 낳아놓고 단 한 번도 양육자로서의 책임을 져본적이 없는, 종국에는 새까만 밤에 잘 지내렴 한마디 남겨두고 사라져버린 그 여자나 전언 한장 달랑 손에 들려서 남의 집 대문 앞에 세워둔 그 쓰레기ㅡ그 여자랑 그냥 동거만 했을 뿐이니 양부도 아니었다ㅡ나, 그 전에 거쳐간 그 여자의 남자들 그 누구 하나 이런 표정을 보여준 적이 없었으니까. 작은 가슴 속에 따뜻한 온기가 희미하게 피어났다. 이 사람의 손을 잡고 싶었다.
미야기는 고개를 푹 숙이고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죄송해요. 저 때문에..]
[아냐 넌 아무것도 잘못한게 없어]

고개를 좌우로 저으며 미야기의 말을 부정하는 미츠이는 가슴속에 찡한 아픔을 느꼈다. 아이의 뺨을 한 손으로 쓰다듬으며 말을 이으려 했지만 미야기가 먼저 입을 열었다.

[잘 곳만 주시면 제가 다 할게요. 저 요리도 잘하고 청소도 잘해요. 그러니까 ]

아이는 양 손으로 미츠이의 손을 꼭 움켜쥐었다. 이 사람의 손은 놓치고 싶지 않다는 마음 하나로 자존심이고 뭐고 다 제쳐두고 매달리듯 말했다.

[나 버리지 마세요]

미야기의 말에 미츠이는 울컥해서 작은 몸을 와락 끌어안았다. 참으려고 했지만 조금 눈물이 새어나와버렸다. 무책임한 부모 탓에 이 아이가 받았을 상처를 생각하면 마음이 아팠다. 유복한 가정의 다정한 부모 밑에서 자란 미츠이는 그런 환경을 그저 상상할 수 밖에 없었지만 그것만으로도 눈물샘이 이렇게 쓰린데. 가늘게 들썩이는 어깨를 작은 손이 쓰다듬는 감촉이 너무 슬퍼서 눈물을 멈출 수가 없었다.
몇 번이고 미안하다고 사과하며 흐느껴우는 미츠이에게 미야기는 그저 등을 쓰다듬어주는 것 밖에 할 수 있는게 없었다. 왜 아무 잘 못도 없는 당신이 울면서 미안하다고 하는거야?  좀 의아했지만 그것보다 오늘 처음 본 정체모를 아이를 위해ㅡ설령 그게 동정심이라 하더라도ㅡ눈물을 흘릴 수 있다는게 신기하고 고마웠다. 날 위해 눈물을 흘려준 사람은 이 남자가 처음이었다. 그렇게 생각하자 콧날이 시큰해졌지만 미야기는 울지 않았다. 이런 일로 울기엔 그는 너무 많은 일을 겪어왔고 눈물로는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사람들은 우는 아이를 좋아하지 않는다.

[미안. 내가 어른인데 니가 더 어른같다, 야]

겨우 울음을 그친 미츠이는 약간 잠긴 목소리로 쑥스러운 듯 웃으며 제 뒷머리를 긁적거렸다. 미야기는 아니에요 라며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미츠이는 작게 헛기침을 하며 말을 이었다.

[우리 먼저 호칭 정리를 하자. 미야기 넌 몇살이야?]

그러곤 잠깐 미야기를 훑어보더니,

[초등학생?]
[...중1이에요..!]

조금 발끈해서 한 쪽 눈썹을 씰룩이며 저도모르게 목소리를 높였다. 아뿔싸 했다. 하지만 그런 미야기의 모습이 귀여웠는지 미츠이는 살풋 웃음을 흘렸다. 
좀전까지 울더니 지금은 이렇게 맑게 웃고 있고 참 바쁜 사람이네, 미야기는 속으로 피식 웃었다.

[미안미안. 내가 그런걸 잘 볼 줄 몰라서]

미야기의 머리를 슥슥 쓰다듬으며 말을 이었다.

[그럼 형이나 삼촌...? 뭐 니가 원한다면 이름도 상관없고]
[이름 아직 못들었어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미야기를 쳐다보던 미츠이의 입에서 아!! 하는 탄성이 흘러나왔다.

[그러고보니 내 이름이 아직이었네. 난 미츠이 히사시라고해. 25살.]
[미츠이 히사시...]

미츠이의 이름을 작게 되뇌이며 미야기는 고개를 끄덕였다.

[형..이라고 불러도 되요?]
[그래!]

미츠이는 나 외동이었는데 오늘 동생이 생겼네? 라며 생글생글 웃었다. 여름 햇살같은 미소에 미야기의 심장이 쿠쿵 이상한 소리를 냈다. 제 가슴과 미츠이의 얼굴을 번갈아 쳐다보며 미야기는 고개를 살짝 갸웃했다.

[앞으로 잘 부탁한다, 미야기]

반짝이는 미소를 보며 가슴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심장 소리가 이렇게 크게 들린 적은 처음이었다.
미야기 료타 13세 여름 생애 처음으로 아름다움을 알았다.







◇◆◇◆◇◆◇

# 인생 3회차 미야기 료타(13)X인생 초회차 미츠이 히사시(25)
# 여기 미야기 모친은 카오루상이 아닙니다(매우 중요)
# 미츠이네 부자 설정. 준재벌 쯤 되면 좋을거같다. 일본 3대 재벌 미츠이 그룹....까진 아니더라도 ㅋㅋ
#  똥차(폐차?) 컬렉터 설정 미츠이랑 넘 잘 어울리는거 같음!
# 미야기  속으로 この人チョロい 라고 좀 생각할지도<<   산전 수전 다 겪어온 미야기 소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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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차게 거부당했다.
살을 찢는 아픔보다 그의 표정이 더 아팠다.
산산이 부서진 짝사랑을 주워담으며 업보가 돌아온거라며 혼자 울면서 웃었다.

.....................



[후아암~]

양호열은 나른하게 하품을 하며 복도를 걸었다. 오늘은 웬일로 일찍 잠이 깨서 다시 잠을 청하기도 뭐하고 해서 그대로 학교로 나온 것이었다. 이른 아침의 학교는 고요했다. 옥상에서 한 대 태울까 하고 손에 든 담배갑을 주머니에 찔러넣고 복도를 어슬렁 어슬렁 걷고 있는데 시선 끝에 낯익은 인물이 비쳤다. ...정대만...? 저긴 보건실인데 앞에 서서 뭐하는 거지? 저벅저벅 보건실 앞에서 멍하게 서있는 인물에게 다가갔다.

[대만군? 여기서 뭐... 우왁 팔 왜 이래요?! 피 나잖아!]

하얀 팔에 그어진 상처에서 선혈이 가느다랗게 흘러내려 팔과 손을 붉게 물들이고 있었다. 정대만은 그제서야 자신의 손을 가만히 내려다보다가 호열에게 시선을 향했다. 멍하던 눈에 빛이 돌아오며 눈 앞의 인물을 인식한 듯 했다.

[..........어...? 아 양호열. 여기서 뭐하냐?]
[여기서 뭐하냐? 가 아니라! 지금 당신 어떤 상태인지 알고는 있는거에요?]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으로 바라보는 호열을 보며 대만은 눈을 깜빡이다가 아, 이거. 하고 다친 팔을 들었다.

[그냥 긁힌거야. 근데 보건실 문이 잠겨있어서..]

그야 이런 이른 아침에 문이 열려있을리가 없지. 선생들 출근 시간까지 아직 시간이 꽤 남았다고.
오늘의 정대만은 어딘가 좀 이상하다고 호열은 생각했다. 부실에 구급상자 정도는 있을텐데, 왜 굳이 여기까지 와서 잠긴 문 앞에서 멍때리고 있는거지? 부실에 있지못할 사정이라도 있나? 여러 의문이 떠올랐지만 일단 눈 앞에 보이는 저 상처부터 어떻게 하자 싶어서 보건실 문 앞에 섰다.
얇팍한 가방을 보건실 문 유리창에 대고 한 쪽 구석을 팔꿈치로 강하게 가격하자 간단하게 깨졌다.

[?!야 그걸 깨면 어떡해?! 그러다가 걸리면..]
[우리 밖에 없는데 누구한테 걸려요? 그보다 가까이 오지마요. 또 다치면 큰 일이니까]

호열은 깨진 유리 안으로 조심스레 한 쪽 팔을 집어넣어 보건실 문의 잠금 장치를 열었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며 대만에게 말했다.

[들어올 때 유리 조심해요]
[응]

일단 문을 닫고 대만의 손을 잡고 개수대로 가서 상처 부위를 흐르는 물에 씻었다. 옅은 피빛이 섞인 물이 개수구로 흘러내려가는걸 보고 있자니 절로 미간이 좁혀졌다. 그냥 긁힌걸로 이렇게 까지 피가 난다고? 싶었는데 씻어내고보니 꽤 상처가 깊어보였다. 아침 댓바람부터 대체 뭘 하고 다녔길래. 좀 신경쓰였지만 딱히 묻지는 않았다.  팔 안쪽의 희고 여린 피부를 가르는 상처가 유난히 붉어서 호열은 저도 모르게 마른침을 꼴깍 삼켰다. 무슨 운동 선수 피부가 이렇게 하얗냐. 

[거기 앉아있어봐요]

침상에 앉혀놓고 약이랑 붕대를 찾으러 발걸음을 떼려는데 뒤에서 목소리가 붙잡았다. 

[문 열어줘서 고마워. 나머지는 내가 알아서 할테니 넌 가봐라. 유리도 내가 깼다고 하면 되고.]

뭐라는거지, 이 사람? 순간 짜증이 치밀어 표정 필터링없이 날 것 그대로의 얼굴로 뒤돌아 내려다보았다. 흠칫 하고 표정이 굳어버리는 모양이 참 투명하다 싶었다. 절대 거짓말은 못 할, 하더라도 금세 탄로날 타입이다. 농구부를 습격했던 날의 일을 아직 마음에 두고 있는 거겠지. 하긴 그 날 좀 사정 없이 패긴 했으니까. 딱히 겁을 줄 생각은 없었기에 바로 웃는 얼굴을 만들었다.  

[내가 시작한거니 그냥 마무리까지 하게 해줄래요?]

그냥 닥치고 거기 가만히 앉아있기나 해 를 최대한 순화해서 얘기했다. [아, 알았어. 그렇게 화낼건 없잖아] 입 안에서 웅얼웅얼 말하며 잠자코 앉아 있다. 

[화내긴 누가 화를 냈다고 그래요]
[....너 정색 하면 무섭다고...] 

입술을 삐쭉이며 투덜대는 꼴이 저게 어딜 봐서 2살이나 많은 선배인가 싶다. 호열은 피식 웃으며 소독약과 연고등을 챙겨서 침상 앞 간이 의자에 앉았다. 

[어디 한 번 봐요]

정대만은 얌전히 팔을 내밀었다. 꿰매야하는거 아닌가 싶었지만 지금은 어쩔 수 없으니 일단 소독약병을 열었다. 소독약의 쎄한 냄새가 퍼졌다.

[응급 처치 정도니까 나중에 보건 선생한테 제대로 진찰 받아요]
[.......어...엉]

또 멍하게 있다가 뒤늦게야 대답을 한다. 무슨 생각을 그리 하는지.
호열은 소독약으로 듬뿍 적신 위생솜으로 상처 끄트머리를 꾹 눌렀다. 그냥 좀 짓궂게 굴고 싶어졌다. [아악 야 아파!!] 소리를 지르며 팔을 빼려는걸 손목을 꽉 잡아 저지했다. 눈꼬리에 눈물 방울을 달고 노려보는게 제법 귀엽다. 자신보다 덩치 큰 남자 사람에게 붙여도 될 수식어인가 싶긴하지만.

[엄살부리기는]
[진짜 아프다고!!]
[그렇게 아프면 울어요. 미련하게 참지말고. 우리 아직 어른 아니잖아요]
[......]

아무런 대꾸도 없었다. 묵묵히 소독약을 발라가는데 훌쩍이는 소리가 들렸다. 못들은 척 소독을 끝내고 연고를 조심스레 그 위에 발랐다. 가끔 바지에 동그란 짙은 얼룩이 생기는게 보였다. 흐트러진 숨소리가 보건실을 잔잔하게 울렸다.
그냥 참지 않았으면 했다. 이 사람은 제대로 참는 방법을 모르거든. 무작정 억누르고 덮어버리는게 참는 것이 아닌데. 적절히 소화해내고 주기적으로 환기, 발산을 해줘야하는데 아마 양아치 시절에도 전혀 발산을 하지 못했을거다. 그러니까 그렇게 주먹이 약하지. 그러다가 폭발하면 결국은 자기 자신은 물론 주변 사람들에까지 그 파편이 튀어 상처를 입히고 마는거다. 그리고 그 업보가 본인에게 돌아오는 거지. 정대만의 경우는 인복은 있어서 그 일로 누군가 원한을 품은 사람은 없어보이지만. 어느쪽이냐면 스스로 업보를 짊어지고 있는 걸로 보였다. 

양호열은 가볍게 머리를 좌우로 털어 머릿속의 생각을 흐트려버리고 붕대를 감기 시작했다. 남의 인생 분석할 여유가 어딨어, 내 앞가림 하기도 벅찬데.
여기저기서 싸움을 하다보면 다치는 일도 허다해서 상처 처치는 익숙했다. 붕대 고정까지 야무지게 마무리하고 [자, 다 됐어요] 하고 손목을 잡고 있던 손을 풀었다.

[고맙다]

눈가는 빨갰지만 어딘가 좀 풀어진 표정으로 감사 인사를 건네는 두 살 연상 선배에게 호열은 어깨를 으쓱해보이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괜히 유리창 내가 깼느니 나서지나 말아요. 나나 대만군이나 이 이상 학교에 찍혀서 좋을거 없잖아. 그냥 두면 학교에서 알아서 처리하겠죠]

대만이 고개를 끄덕이는 걸 보고 자리를 정리 하고 보건실을 나왔다. 뒤따라 나오는 대만에게 한 손을 들어보이고는 발걸음을 옮기려는 찰나.

[양호열 너도 내가 싫냐?]

호열은 천천히 뒤돌아서 목소리의 주인을 응시 했다. 담담하던 표정이 시선을 마주치자 살짝 흔들렸다. 
너'도' 라는 구절이 좀 신경 쓰였지만 굳이 캐묻지는 않았다. 아마 저 상처랑 관련되어있겠거니, 그냥 그렇게 가볍게 넘겨짚고 넘어갔다. 어차피 남의 일이다. 가능한한 귀찮은 일에는 관여하지 않는게 상책. 그것이 호열이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체득한 깨달음 중 하나였다. 뭐 요 근래 들어서는 어쩔수 없이 휘말려드는 일도 꽤 있었지만. 그렇게 만든 장본인에게 이런 질문을 받다니 이 상황이 뭔가 우스웠다. 
정대만이라는 인간에 대한 호불호를 묻는다면 어느쪽도 아니었다, 아마도. 농구부를 습격했던 그 날도, 물론 처음에는 혐오에 가까운 감정을 느꼈지만 친구, 적, 스승, 그 외 제3자 모두가 보는 앞에서 울면서 무너져서 농구가 하고 싶다는 그를 봤을 땐, 그저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그런 상황에서 자신의 약한 부분을 가감없이 드러내고 솔직해질 수 있다는 게. 호열은 난 절대 죽었다 깨어나도 저렇게는 못할 거라고 속으로 혀를 찼다. 호감은 아니었지만 정대만이라는 인간을 다시 보는 계기는 되었다.  그 날 이후 머리를 짧게 친 그는 자신이 선언한대로 농구에 모든 것을 다 바친 사람처럼 매진하였다. 농구를 하는 그는 세상의 모든 것을 가진 것 마냥 즐거워보였고 반짝 반짝 빛났다. 이런 말 하면 본인은 화내겠지만 예쁘다고 생각했다. 언젠가부터 그런 그를 눈으로 쫒게 되었다. 그러다가 그 날, 북산팀을 응원하다가 그만 그 말이 툭 튀어나오고 말았다. 

『今は好きさ!』

저도 모르게 나와버린 말에 내심 당황했지만 다른 녀석들도 같이 호응해준 덕분에 분위기에 대충 묻어갔다. 가슴이 빠르게 뛰었지만 내색하지 않았다. 속마음을 드러내지 않는 것은 자신있었으니까. 왜 그런 말이 튀어나왔는지는 잠깐 생각하다가 관두었다. 성가신 일은 어떻게든 피하고 싶었다. 소중한 것은 지금 곁에 있는 녀석들로 충분하다, 고 자신을 납득시켰다.

호열은 싱긋 웃으며 말했다. 

[今は好きさ(지금은 좋아해요)]

정대만은 잠깐 놀란 표정을 짓더니 뭔가 떠올렸는지 어깨를 들썩이며 웃기 시작했다. 

[푸흡, 그래 고맙다]

이 사람은 참 예쁘게 웃는구나.

[고마우면 밥이나 사요]

저도 모르게 툭 나와버린 말에 심장이 덜커덩 했다. 주머니 속 담배갑을 꾹 움켜쥐었다. 말려들고 말았다.

[그래. 그러자. 시간 날 때 얘기해라]

생글 웃어보이고는 뒤돌아 멀어져가는 뒷모습을 바라보며 호열은 마른 세수를 했다. 뭐지 이 여우에 홀린듯 한 기분은. 저 멀리 작아진 뒷모습을 힐끔 쳐다보고는 계단을 향했다. 
담배가 너무 고프다.






.....................

# 今は好きさday 에 올리고 싶었는데 대지각😂
# 밥 같이 먹고 하다보면 커플도 되고 그러는거지!
태섭: 야 뭐라고?!
# 감사합니다(⁠ ⁠ꈍ⁠ᴗ⁠ꈍ⁠)


Posted by Bernard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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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만이가 많이 웁니다. 주의!



정대만의 다섯번째 고백 거절 장면을 목격했을 때 송태섭은 자신의 첫사랑이 끝났다고 생각했다. 저정도로 단호하게 좋아하고 있는 누군가가 있다는 얘기였으니까. 흔히들 첫사랑은 이루어지지 않는다잖아. 송태섭은 자신의 첫사랑도 그 대전제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을 뿐이라 생각했다. 단지 좀 길었을 뿐.
게다가 그렇다고해서 정대만을 향한 마음이 사라진 것도 약해진 것도 아니라는 것 역시 금세 깨달았다. 옥상에서 깨지고 학교 뒷뜰에서 가루가 된 첫사랑은 그냥 짝사랑으로, 그것을 정의하는 단어의 앞글자가 하나 바뀌었을 뿐이었고 정대만 때문에 심장이 팔딱일 때 느꼈던 달달한 아픔이 카카오 80% 함유 초콜릿 같은 씁쓸한 통증으로 바뀐 정도였다. 그 쓰디쓴 초콜릿도 계속 먹다보면 그 안에 숨어있는 극소량의 달콤함을 기어이 찾아내서 거기에 집착하고 스스로를 중독시켜버린다. 실제 카카오80 초콜릿은 몸에라도 좋지, 이건 뭐 심장이 남아나질 않는다. 정대만은 거리감 버그가 있는 인간이라 더 질이 나쁘다. 짝사랑 앞에 '망한' 이란 수식어를 갖다붙이며 송태섭은 깊디깊은 한숨을 토해냈다.



[송태섭~ 야~~거기 앞에 가는 태섭아~~]

지금 제일 듣고 싶지 않은 목소리가 태섭의 뒷통수를 후렸다. 환청인가 하고 그냥 지나가기엔, 아직 이른 아침이라 인적이 드문드문한 등교길에 쩌렁쩌렁 울릴정도로 큰 목소리였다. 
(야생의) 정대만이 나타났다!
▶싸우기
▶대화하기
▶도망가기
얼마 전 했던 게임 장면이 떠올랐다.
마음같아선 세번째 선택지를 마구 연타하고 싶었지만 여기서 도망간 들 무슨 소용인가, 어차피 부실이나 체육관에서 다시 조우하게 될 것을. 결국은 '대화하기' 밖에 없잖아.
평소보다 일찍 나왔건만 하필 저 인간도 일찍 나올건 뭐람. 속으로 투덜대며 하늘을 한 번 슬쩍 노려보았다. 깊은 한숨을 내쉬며 걸음을 멈추고 천천히 뒤돌았다. 
꽤 멀리서 목소리가 들렸던 것 같았는데 어느새 뒤에 그가 우뚝 서 있어서 태섭은 저도 모르게 흠칫 했다. 

[일찍 왔네요]

최대한 아무렇지도 않은척 올려다보며 인사를 건냈다. 아아 오늘도 이 사람은 반짝반짝 눈부시다. 화창한 날 초록 잎사귀 사이로 비쳐드는 맑은 햇살같은. 뭐가 그리 좋은지 이런 이른 아침부터 싱글벙글. 오전에는 대체적으로 저기압에 가까운  태섭으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텐션이었다.  
정대만은 엉 이상하게 아침에 눈이 빨리 떠져서 말야. 라며 기지개를 쭉 폈다. 저도 모르게 시선이 따라간다. 길게 쭉 뻗은 팔다리에 작은 머리로 이루어진 프로모션은 극상이었고 운동까지 해서 군더더기 없이 잘 빠진 라인에 저 얼굴에 그 머리결까지. 하느님도 참 정성들여 빚어내셨구나. 저도 좀 신경써주시지 그랬어요!
정대만 찬양인지 불만인지 알 수 없는 사설을 속으로 늘어놓는 동안 계속 정대만을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는 사실을 자각하지 못하고 있던 송태섭은 똑같이 자기를 빤히 응시하는 대만의 시선을 뒤늦게 알아채고 흠 헛기침을 하며 시선을 흘렸다. 뜨거워진 귓볼을 피어스를 만지는 척 손으로 가리며 걸음을 옮겼다.

[어서 가요. 연습해야죠]
[응. 참, 야 어제 티비에서 NBA하이라이트 보여주는거 봤냐?]

정대만이 옆에 바싹 따라붙어서 잡담을 늘어놓았다. 정대만과의 이런 일상 대화는 즐거웠다. 서로 공통 화제도 잘 맞고 개그 코드도 비슷했다. 하지만 동시에 괴로웠다. 옷섶에서 풍겨오는 섬유유연제의 향기라든가 옆에서 희미하게 느껴지는 체온이, 듣기 좋은 중저음의 목소리가 머릿속을 헤집고 이성을 마구 흔들어댄다.
태섭은 적당히 대꾸하며 주머니속에 찔러넣은 손을 꾸욱 말아쥐었다. 오늘도 덥다.



정대만의 사물함은 태섭의 바로 옆이었다. 정말 공교롭게도. 게다가 오늘은 일찍 온 탓에 부실에는 아무도 없었다. 망했다. 이렇게 된 이상 빠르게 교복을 갈아입고 체육관으로 가자싶어 태섭은 서둘러 사물함을 열었다. 교복 셔츠 단추를 푸는데 마음이 급해서인지 자꾸 손가락이 꼬인다.
정대만도 옆에 서서 교복 셔츠를 벗기 시작했다. 옆에서 들려오는 사락사락 옷자락 소리에 저도모르게 돌아가려는 고개를 애써 정면에 고정시켰다. 입 안에 고인 침을 삼키는데 유난히 꿀꺽하는 소리가 크게 느껴져서 아랫입술을 꽉 깨물었다. 오늘은 뭔가 좀 이상했다. 점점 들썩이는 심장 박동이 위험 신호처럼 느껴졌다. 어서 여기서 나가자.
하지만 교복셔츠를 벗고 반팔티에 머리를 끼워넣으며 무심결에 흘린 시선 끝에 작고 발그레한 핑크빛의 그것이 걸렸다. 순간 뭔가 툭 끊어지는 소리를 들었다.
온 몸이 심장이라도 된 것 마냥 거세게 쿵쾅거렸다. 아랫쪽에 피가 몰리는 감각이 너무나도 선명하다. 미친 위험하다. 태섭은 앞뒤 생각할 겨를없이 사물함 테두리에 냅다 이마를 쾅 박았다. 격통에 눈물이 찔끔 나왔지만 진정될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옆에서 난 소리에 놀란 정대만이 또 이마를 박으려는 태섭의 몸을 다급히 돌려세웠다.

[야  송태섭 너 갑자기 왜그래??!]

태섭의 빨개진 이마로 손을 뻗으려는 순간,

[건들지마!!]

대만의 손을 뿌리쳤다. 당황해서 저도 모르게 손에 힘이 들어가버렸다. 내쳐진 반동으로 대만의 팔이 튕겨 캐비넷 문 모서리에 싹 긁혀서 빨간 생채기가 생긴 것이 보여 잠시 멈칫했지만 거기에 신경쓸 여유는 없었다. 송태섭은 아무말 없이 바로 부실 밖으로 뛰쳐나와 복도를 있는 힘껏 달려 화장실로 향했다. 화장실 칸 문을 걸어잠그고 턱까지 차오른 가쁜 숨을 고르며 아래쪽을 내려다보았다. 그 곳은 묵직했고 바지 앞섶의 볼륨감이 평소와 퍽 다르다. 아니 와 진짜 돌았냐고, 송태섭 너 이새끼야?!?! 속으로 온갓 욕짓거리를 자신에게 퍼부으며 변기 뚜껑 위에 털썩 주저 앉았다. 자신이 정대만을 그런 눈으로 보고 있다는 것은 자각하고 있었다. 꿈에도 이미 여러번 등장했다. 그런 꿈 있잖아 그런 꿈. 그래도 지금까지 이렇게 노골적으로 몸에 반응이 나타난 것은 처음이었다. 실화냐. 혹시 이것도 꿈이 아닐까? 머리카락을 쥐뜯어보니 아프다. 꿈은 아니네. 가망도 없는 상대에게 욕정해서 어쩌자는건가. 그렇게 생각하니 좀 울고 싶어졌다.
여전히 기세등등하게 고개를 쳐들고 있는 이놈을 여기 앉아 뺄수도 없는 노릇이고ㅡ그러긴 죽어도 싫었다ㅡ진정될 때까지 양손으로 얼굴을 감싼채 한숨을 푹푹 쉬며 속으로 조선왕조 계보를 반복해서 읊었다. 
고집스러운 녀석이 좀 진정이 되자 그제서야 이마의 통증과 함께 슬그머니 아까의 기억이 떠올랐다. 그 때 정대만이 어떤 표정이었는지 보지 못했다. 날 위하고자 한 행동을 갑자기 그런식으로 쳐냈으니 황당했겠지. 화났으려나. 팔에 상처 괜찮으려나? 얼핏 봐선 그리 깊어보이진 않았는데. 약은 제대로 발랐으려나. 정대만 그런 부분 꽤 대충 대충 넘어가는 편인데. 의문과 걱정이 서로 꼬리를 물고 머릿속을 빙빙 맴돌았다. 정대만도 신경쓰이고 옷도 갈아입다 뛰쳐나온터라 일단 일어나서 부실로 향했다.
부실에는 그새 등교한 다른 부원들이 몇 있을 뿐 정대만은 없었다. 부원들과 짧게 인사를 나누고 후딱 갈아입고 체육관으로 향했다. 거기에도 없었다. 보건실에 간건가. 이 시간에 보건실 문이 열려있나? 가볼까? 보면 뭐라고 해야하지? 일단 사과부터하고... 잠시 망설이는 사이에 최치수가 체육관으로 들어왔고 아침 연습이 시작되어버렸다. 정대만의 소재가 무척 신경쓰였지만 어쩔 수 없다고 스스로에게 변명하며 연습에 집중했다.
연습 시작 후 30분쯤 지나서야 정대만이 모습을 나타냈다. 뭐라 한마디 하려던 최치수는 그의 팔에 감겨있는 붕대를 보고 준호에게 시선을 보냈고 준호가 대만에게 다가가 이것저것 묻기 시작했다.
태섭은 농구공을 든 채 뒤늦게 나타난 정대만을 쳐다보았다. 팔에 깔끔하게 감겨있는 붕대를 보니 보건실에 갔다온 모양이다. 다행이라는 생각과 함께 미안함과 후회가 밀려왔다. 역시 얘기하고 가볼걸 그랬나. 태섭의 시선을 느꼈는지 대만은 아주 잠깐 눈길을 마주쳤다가 이내 눈을 돌렸다. 찰나였지만 그의 안색이 그다지 좋지않다는 것을 눈치챈 태섭은 마음이 불편해졌다. 저때문에 그런건지 설마 그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건지. 가서 아까 일을 사과하고 물어보고 싶었지만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 날 아침 연습은 둘 다 주장의 핀잔을 들을 만큼 엉망이었다.
수업시간 내내 정대만 생각으로 수업은 듣는 둥 마는 둥했다. 정대만 걱정 반. 그리고 반은 이 버거운 첫/짝사랑의 미래. 혼자 힘들고 상처입는 것은 감내할 수 있지만 스스로를 주체하지 못하고 그에게까지 상처를 입히고 말았다. 이건 완전 다른 문제다. 통제하지 못하는 감정을 끌어안고만 있다가 폭주했을 때 어떤 결과가 따라오는지 경험으로 학습한 당사자로서 송태섭 본인이 가장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때문에 더더욱 이대로 있을 수는 없었다. 감추고 갈 수 없다면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부딪혀서 깨지는 수밖에. 엔딩은 이미 정해져있으니 필요한 건 각오 뿐이다.


방과 후 체육관에 가니 정대만이 있었다. 혼자 슛연습을 하는 그를 태섭은 입구에 멈춰서서 바라보았다. 여전히 아름다운 동작이었지만 어딘가 힘이 없어 보인달까 집중을 못하고 있는 듯한 인상을 받았고 손을 떠난 볼은 역시 림 테두리를 맞고 튕겨나왔다. 두 번 세 번 다시 해도 마찬가지였다. 대만이 한숨을 쉬면 한 손으로 팔에 감은 붕대에 손톱을 세우는 것이 보였다. 그러고보니 오전에는 깨끗했던 붕대가 너덜거리고 있었다. 농구화의 한 쪽 신발끈도 풀려있다. 저러다가 잘못 밟고 넘어지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안그래도 무릎도 안좋은 양반이! 그리고 팔은 왜 저지경인건데! 태섭은 미간을 찌푸린채 성큼성큼 빠른 걸음으로 다가가 정대만의 손목을 낚아챘다. 갑작스런 태섭의 등장에 눈을 동그랗게 떴지만 이내 손목을 뿌리치려했다.

[야 왜 이래.  이거 놔]
[잔말말고 따라와요]

빠져나오려고 버둥대는 정대만을 무시하고 손목을 쥔 손에 힘을 주며 반강제로 구석 벤치로 이끌었다.

[여기 가만 앉아 있어요]

벤치에 대만을 앉히고 가만 있으라고 못박았다. 정대만은 그런 송태섭을 한 번 노려보고는 고개를 돌려버렸다. 어쨌든 말은 들을 모양이다.
태섭은 끈이 풀린 농구화 앞에 무릎을 굽혀 앉았다.

[이거 다 묶으면 보건실 갔다와요. 붕대 엉망이잖아요]
[.......어]

농구화 끈 양쪽으로 잡고 움직이려던 손이 멈칫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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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였더라. 정대만이 농구화의 끈이 풀려서 그 자리에서 무릎을 구부리고 앉아서 끈을 묶으려는 걸 보고 [무릎 부담 가면 어쩌려고 그래요] 하고 체육관 구석 벤치로 데려가서 묶어준 적이 있었다. 그 날부터 끈이 풀린게 보이면 그 때마다 묶어주었다. 
어느날 여느 때처럼 풀린 신발끈을 묶어주고 있으니, 

『태섭이 넌 내 신발끈 풀린거 어떻게 그렇게 귀신같이 아냐?』

신기하다며 웃는 대만을 보고 깨달았다. 내가 그 정도로 이 사람을 눈으로 쫓았구나. 그 때 처음 심장에 꽂혀있는 첫사랑의 잔해의 존재를 느꼈다. 

『그러게요. 안테나라도 달렸나봐요』
『뭐야 그게ㅋㅋ 근데 왜 니꺼랑 매듭이 달라?』

태섭은 힐끔 자기 농구화 끈 매듭 한 번 보고 손을 멈추었다. 

『이 쪽이 형 농구화랑 잘 어울리는거 같아서요. 다시 묶어줘요?』
『아 그런거야? 그럼 그냥 하던대로 해줘~』

송태섭은 거짓말을 했다. 
왜냐면요.
이게 더 잘 풀리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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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망설이는 듯 멈칫했던 태섭의 손이 풀린 끈을 쥐고 매듭을 만들기 시작했다. 자신의 농구화와 똑같은 매듭을.
손을 움직이며 대만에게 말을 건냈다. 

[오늘 아침 일은 미안해요]
[...됐어. 별로 아프지도 않고]

대만은 손으로 붕대를 쓸어내렸다. 얼마나 긁어댔는지 깔끔했던 붕대가 너덜너덜 해져서 까슬까슬했다. 
한 쪽 끈을 다 묶은 태섭은 끈이 풀리지 않은 쪽의 끈도 풀어 새로 묶기 시작했다.

[형]
[어?]

손을 멈추었다. 아니 손이 달달 떨려서 끈을 잡고 있는 손에 힘을 꾹 주었다. 뒷걸음질 그만 치자, 송태섭.
시선은 여전히 대만의 농구화에 고정한 채 깊게 숨을 들이켰다가 짧게 내뱉고 오랜 시간 동안 속에 품어왔던 마음을 목소리에 실어 떠나보냈다.

[나 형 좋아해요]

긴 시간을 품어왔던 무게 치곤 정말 헛웃음이 나올 정도로 짧은 한마디. 위가 아리고 심장이 아플정도로 쿵쿵 거세게 뛰었다. 얼굴이 뜨겁다. 어쩔 수 없잖아.  눈 앞의 철조망을 찢고 들어갔으니 상처가 날 수 밖에.
제 3자 입장에서 봐왔던 장면의 당사자가 되어보니 마치 선고를 기다리는 피의자마냥 입안이 타들어가는 기분이었다. 이미 답을 알고 있는데도 이런 기분인데 지금까지 봐왔던 이들은... 그들의 용기에 경의를 표하고 싶을 지경이다.
하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선고는 내려오지 않았고 대신 흐트러진 숨소리와 함께 훌쩍이는 소리가 들렸다. ...어??  의아하게 생각한 태섭은 살며시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입이 딱 벌어졌다. 제 손등으로 입을 가리고 있는 정대만의 얼굴은 빨갰고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해서 간헐적으로 어깨를 들썩였다. 태섭은 숨이 턱 막혔다. 전혀 예상치 못 한 반응에 벙쪄있는데 밖에서 백호와 군단들이 떠들며 오는 소리가 들려 정신이 퍼뜩 들었다.  안그래도 저번에 모두들 앞에서 울었던 전적이 있는데 또 후배들 앞에서 그런 모습 보이는건 싫겠지. 일단 자리를 피하는게 좋겠다고 생각한 태섭은 대만의 손을 잡아 일으켰다.

[형 일단 따라와요]

이번에는 순순히 따라왔다. 태섭은 체육관을 나와 복도를 빠른 걸음으로 지나 부실 앞에 멈춰섰다. 하지만 부실은 언제 사람이 들락날락할지 모른다는 생각에 하나 건너에 있는 비품실로 들어갔다. 지난 주에 한 번 싹 청소를 한 터라 깔끔하게 잘 정돈 되어있었다. 구석에 있는 플라스틱 의자를 가져다가 거기에 정대만을 앉혀놓고 비품실 문을 잠궜다. 후웁 숨을 한 번 내쉬고 뒤돌았다. 정대만은 연신 흘러내리는 눈물을 손등으로 훔치며 훌쩍이고 있었다. 분명 정대만에게 좋아한다고 고백을 했는데 왜 이런 상황에 처해있는건지 아무리 머릿속을 풀가동해봐도 답이 보이지 않았다. 걸리는게 있다면 오늘 아침 일인데...태섭은 뒷머리를 북북 긁으며 대만에게 다가갔다. 마주 보고
앉아 대만의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눈물에 젖어있는 얼굴은 아직 발갛게 상기되어 있었다. 눈을 맞추자 슥 시선을 피해 올리브빛의 옅은 눈동자가 긴 속눈썹의 그림자 밑으로 숨어들어가는 모습이 가슴에 달달한 갈증을 불러일으킨다. 깔끔하게 차이면 이런 감정도 싹 사라져줄까?
다 훔쳐내지 못해 턱 흉터 아래로 방울져 있는 눈물 방울을 엄지 손가락으로 슥 훑었다.

[왜 갑자기 울고 그래요. 깜짝 놀랐잖아]
[너야말로 ....흑..무슨.......고....백을 그렇게 하냐....훌쩍....깜빡이도 없이 그렇게..... 훅 들어와...]
[...내가 고백한게 울 정도로 싫었어요?]

대만은 고개를 좌우로 세차게 저었다. 물기를 머금은 목소리가 답했다.

[너야 말로 나 싫어하는거 아니었냐고]
[내가 왜 형을 싫어해요]

아 역시 아침에 제대로 얘기를 했어야했다. 이제와서 후회를 해봐야 이미 지나간 일을 돌이킬수는 없지만. 지금이라도 제대로 수습하는 수밖에. 라곤 하지만 그 일의 진상(?)을 입에 담으려니 좀처럼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나, 나도 흣  너랑 좀...흐윽.. 친해졌다 생각했었는데.... 너 요즘 나만 보면 한숨 계속 쉬고...피하려는거 같고. 흑  오늘 아침에도...히끅..흑]

정대만은 팔뚝으로 얼굴을 가리고 아예 엉엉 울기 시작했다.  너무 서럽게 울어서 보는 사람 콧날까지 시큰해졌다. 눈치채고 있었구나. 하긴 아닌 것처럼보여도 꽤 섬세한 사람이니. 자기 방어를 위해 무의식적으로 취했던 작은 행동들이 계속 상처를 주었을거라 생각하니 죄책감이 밀려들었다. 

[미안해요 형. 내가 생각이 짧았어요. 근데 형 싫어서 그랬던건 절대 아니에요. 오해하게 만들어서 미안해요. 그러니까 울지 마요]

사과하고 달래면서 뺨을 타고 흐르는 눈물을 몇 번이고 손가락으로 닦아주었다. 울음이 잦아들었을 때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오늘 아침 일은........그게...]
[?]

눈물에 촉촉하게 젖은 눈동자가 가만히 송태섭을 응시하였다. 아니...그게....그러니까....그..... 태섭이 자꾸 말을 빙빙돌리니까 잠자코 있던 정대만이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

[...얘기하기 힘들면 그냥 안해도 돼]
[......어요...]
[응?]
[ㅅ...었어요]
[??어?]
[그..게 섰었다고요! 당신 속살보고 갑자기 서버렸다고!!! 그래서 도망 갔어요!!!]

양손으로 제 얼굴을 감싸고 소리를 꽥 질렀다. 아 이런 시발 개쪽팔려, 미친 송태섭 너 오늘 흑역사 진짜 제대로 썼다. 정대만 이걸로 백만년은 놀려먹겠네 아악! 손도 얼굴도 목도 화끈거리다못해 끓어오르는것 같았다. 얘기해버리고 나니 개운함도 있긴 했지만 그보다도 압도적으로 쪽팔려서 고개를 들수가 없었다.  얼마간의 침묵 후,

[푸..풉... 풋! 아하하하하하하]

박장대소하는 소리가 부실에 울려퍼졌다.  쭈뼛쭈뼛 손에서 얼굴을 들어보니 정대만이 눈꼬리에 눈물 방울까지 달고 손바닥으로 벤치바닥을 치며 웃어대고 있었다.
그...그래 경멸당하는 것보다야 비웃음당하는게 백만배 낫기는 한데.. 거 너무 웃는거 아니에요? 울다가 웃으면 어떻게 되는지 몰라?
한참을 웃어대는 정대만을 보며 송태섭의 한쪽 눈썹이 저절로 치켜올라가려고 할 쯤 대만이 두 팔을 뻗어 태섭을 덥썩 끌어안았다. 

[태섭아 너 왜이리 귀엽냐. 크큿]

은은한 체취와 함께 온기가 몸을 감쌌다. 원래도 정대만은 체온이 높은 편인데 울었다가 웃다가 했던 탓인지 더 따뜻했다. 얼굴이 화끈하게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내 자율 신경 망가지면 다 당신 책임이야. 

[귀엽긴 뭐가 귀엽단거야. 팔 좀 풀어봐요. 붕대 갈아줄게요]

품에서 빠져나와 캐비넷에서 구급상자를 꺼내왔다. 너덜거리는 붕대를 조심스레 떼어내보니 붕대 위에서 긁어댄 탓에 생채기가 빨갛게 부어있었다. 생각보다 상처가 깊었다. 새삼스레 미안함과 죄책감이 밀려들어 상처 근처의 핏자국을 솜으로 닦아내며 말했다. 

[미안해요. 많이 아팠을 텐데]
[괜찮다니까]

깨끗한 솜에 소독약을 묻혀 상처를 톡 두드리자 작은 신음소리와 함께 반사적으로 팔을 빼려고 하는 것을 태섭은 대만의 손목을 꼭 쥐고 놔주지 않았다.

[이거봐, 아프구만]
[시, 시끄러]
[조금만 참아요]

빠르게 소독을 하고 그 위에 연고를 조심스레 바르니 이번에는 간지럽다고 난리다. 아니 사람이.... 왜 이렇게 귀엽냐고. 짝사랑은 장렬하게 깨졌건만 콩깍지는 아직도 유효한가보다.
잘라낸 거즈를 상처에 대고 그 위로 하얀 붕대를 천천히 감았다. 테이프로 고정시켜 마무리 하고 태섭은 훅 숨을 내쉬었다. 

[자 이제 말해줘요]
[응?]
[고백 찰 때마다 하는 레파토리 있잖아요]
[그걸 왜...?]
[난 고백했고 형은 좋아하는 사람 따로 있잖아요]

정대만은 뭔가 결심한 듯한 표정의 태섭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아래로 시선을 떨구고 잠시 생각에 잠긴듯 하더니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송태섭도 따라 일어났다. 크게 숨을 들이켰다가 내쉬고는 태섭과 마주보고 서서 입을 열었다. 

[잘 들어라. 딱 한 번만 말한다]
[네]

각오는 되어있다. 그래도 가슴이 떨리는 건 어쩔 수 없나보다. 주먹을 꼭 쥐었다. 좋아하는 사람과 잘되라고 응원은 못해주겠지만 지금까지처럼 지내고 싶다고 해야지. 답변을 속으로 되뇌이고 있는데,

[송태섭 나 너 좋아한다]
[네 알고 있............네???]

잠깐만요. 뭐라고요? 분명 지금 굉장히 얼빠진 표정을 하고 있을게 분명했지만 아무래도 좋았다. 정대만의 얼굴을 쳐다보니 목까지 빨갛게 익어있었다. 짝사랑이 오래되다보니 이제 환청까지 들리는건가?

[자, 잠깐만! 지금 뭐라 그랬어요? 다시 한 번 말해봐요]
[싫어. 한 번만 한다고 했다]
[아씨 정대만 한 번만 더 해달라고!!]

발끈해서 벽으로 밀어붙였다. 양 손으로 벽을 짚고 안에 정대만을 가둔 상태에서 으르렁 댔다. 한 번만 더 해달라구요! 태섭은 안달이 났지만 정대만은 모른척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포기할 수 없었다. 난생 처음 들어보는 고백인데 이렇게 흐지부지할 순 없잖아!

[혀엉, 딱 한 번만 더 해주면 안되요? 나 진짜 태어나서 처음 듣는 고백이라구요]

밀어서 안되면 당겨라. 흐트러진 앞머리 사이로 눈만으로 올려다보며 한 손으로 대만의 티셔츠를 쥐고 살짝 당겼다. 그걸 내려다보던 정대만의 얼굴이 점점 빨개지더니 큰 한숨과 함께 그래 알았다 알았어. 백기를 들었다. 태섭의 앞머리를 더 흐트러트리며 

[나도 너 좋아해, 태섭아.]

발그레한 얼굴로 싱긋 웃었다. 길고 힘겨웠던 첫사랑과 짝사랑이 생각지도 못한 결말을 맞이 하였다. 그 대사에 그 미소는 반칙이라고 정대만. 심장이 날뛰기 시작했다. 지금까지의 씁쓸한 통증이 아닌 이가 녹아버릴 정도로 달콤한 열기가 온 몸에 퍼져나갔다. 눈물샘이 시큰거리는 느낌이 들어 풀썩 그 자리에 주저 앉았다. 고개를 숙인채 심호흡을 했다. 그냥 눈물을 보이고 싶지 않았다. 
정대만도 앞에 쪼그리고 앉아 태섭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야 우냐? 키득 대면서. 발끈 했지만 잠자코 있었다. 머리를 쓰다듬는 손길이 기분 좋았다. 

[형]
[응?]

눈가의 물기를 손등으로 쓱 닦아내며 고개를 들었다. 상체를 굽혀 얼굴을 쑥 들이밀자 쪼그리고 앉아 있던 대만이 벽에 등을 기대고 앉았다. 정대만은 왜? 하며 고개를 갸웃했다. 

[키스 해도 되요?]
[....발랑 까져가지고]
[그걸 이제 알았어요?]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입술을 겹쳤다. 여기까지는 본적이 있어서 했는데 이 다음은 뭘 해야할지 감이 안왔다. 언젠가 봤던 AV를 떠올리며 혀로 대만의 입술을 살살 쓰다듬으며 갈라진 틈새로 쑥 밀어넣었다. 따뜻하고 보드라운 점
막을 핥다가 다가온 대만의 혀를 삭 쓸었다. 혀끝에 온 몸의 모든 신경이 몰린 듯 조그만 자극에도 척추를 타고 찌릿한 감각이 전신을 뒤흔든다. 정신없이 서로의 혀를 핥고 빨아댔다. 색기라든가 분위기고 나발이고 없었다. 그냥 서로 갈구하고 느끼고 싶다는 욕구 하나로 서로를 탐했다. 난잡하게 울리는 물기 어린 소리에 가쁜 숨소리가 얽혀갈 때쯤 입술이 떨어졌다. 누구껀지 모를 타액으로 번들하게 젖은 붉은 입술을 서로 바라보다가 누가 먼저랄것 없이 풉 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아 우리 둘 다 키스 존나 못해 ㅋㅋ]
[그러게ㅋㅋㅋ]

쪽 소리나게 가볍게 입술을 맞추고 꼭 껴안았다.
ㅡ첫사랑도 짝사랑도 첫고백도 첫키스도 다 가져갔으니
따뜻한 체온을 느끼며 작게 속삭였다.

[진짜 좋아해요, 형]
ㅡ당신은 제가 가질거에요.






# 댐 우는거 넘 고자극.... 최애 우는거(슬퍼서든 아파서든 무서워서든 좋아서든) 보는게 취미입니다❤️

# 처음 구상은 이렇게 길지 않았는데.. 요리할 때 절대로 레시피대로 안 하는 사람입니다. 그냥 맛있을거 같으면 마구잡이로 집어넣어서 결과물은 산으로 가버리는 그런거ㅠㅠ

#그런 주제에 손은 개느림🥲

# 감사합니다!



Posted by Bernard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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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태섭은 화가 났다.
아 왜 자꾸 이런 장면이랑 맞딱드리는건데?! 송태섭은 원망스러운듯 한 쪽 눈썹을 치켜세우며 하늘을 노려보았다. 당장이라도 손에 들고있는 쓰레기통을 내팽개치고 이 자리를 뜨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그 마음보다 더, 지금 눈 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상황의 결말을 알고싶다는 욕구가 훨씬 앞섰다.
건물 모퉁이에 숨어있는(?) 송태섭의 시선 끝에는 같은 농구부의 한 살 위 선배가 누군가와 마주보고 서있었다. 분위기가 딱 누가봐도 고백 장면이었다.
상대방은 남학생이었다. 성별이 남자라는 것에 대해서는 이제 놀랍지도 않다. 우연히 목격한 정대만의 고백받는 씬들 중 70%가 남자였으니. 고백받는 당사자도 그런 부분은 신경도 쓰지 않는 듯 했고. 
안경을 쓰고 깨끗하고 단정한 스타일에 키는 송태섭보다 큰 듯 보였다. 젠장 하고 태섭은 속으로 혀를 찼다.  전체적으로 우등생의 분위기가 폴폴 풍기는 것이 어딘가 준호선배와 비슷한 분위기의 남학생이었다.
저번에 봤던 고백씬의 상대는 건장한 야구부 부원이었다. 그 전에는 좀 놀거 같이 생긴 여학생이었고 그전에는.. 태섭은 거기까지 생각하다가 관뒀다. 완전 인간 자석.저 인간 사주 보면 도화살만 잔뜩 껴있는게 아닌가 싶은 생각마저 들었다. 
태섭은 고개를 절레 절레 흔들며 다시 눈 앞의 장면에 시선을 집중했다.
남학생은 잠시 머뭇거리더니 고개를 들어 정대만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고백의 대사를 늘어놨다. 정대만은 잠자코 듣고 있었다. 각도상 표정은 잘 보이지 않았다. 상대방의 말이 끝나자 잠깐의 틈을 두고 대만이 입을 열었다. 이 순간만 되면 늘 태섭의 맥박수는 인생 최대치를 찍었다.

[마음은 정말 고맙다. 그런데 나 이미 좋아하는 사람이 있어]
 
마음 못 받아줘서 미안하다는 사과와 함께 상대방의 장점을 추켜세워 너라면 충분히 매력적인 사람이니 분명 나보다 더 좋은 사람 만날 수 있을거라는 격려에 앞으로도 지금까지와 같은 관계 유지 하고 싶은데 만약 니가 원하지 않으면 가능한한 피하겠다는 배려까지, 세상에 고백을 거절하는 모든 이들에게 메뉴얼 만들어서 돌리라고 하고 싶을 정도로 언제나 깔끔하고 완벽하다.
상대방은 차였음에도 불구하고 되레 그랬구나, 부담줘서 미안하다며

[앞으로도 뭐 모르는거 있으면 언제든지 물어봐. 그리고 누굴 좋아하는진 모르겠지만 응원할게!]

라고 개운한 표정으로 웃으며 말하고는 손까지 흔들며 자리를 떠났다. 정대만도 [어 그래. 고맙다] 같이 손을 흔들며 그의 뒷모습을 배웅했다. 
이게 고백을 차인자와 걷어찬 자의 모습이라니 백호가 알면 뒤로 넘어갈 노릇이다. 그저 정말 대단한 남자라고 밖에는 할 말이 없었다. 
어쨌든 송태섭은 일단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리고 동시에 대체 좋아하는 사람이 누구길래 저렇게 다 뻥뻥 차고 다니는거지? 하는 궁금증도 들었다. 평소 정대만의 생활 패턴을 봐서는 누군가와 사귀고 있는것 같지도 않았다. 평일에는 늦게까지 농구 연습을 하고 하굣길은 방향이 같은 태섭과 거의 같이였다. 주말에도 종종 1on1하자든가 뭐 살거 있는데 같이 가자 든가 그런 전화가 오곤 했으니. 가끔 태웅이랑도 주말에 1on1을 하는것 같았고.  아니면 단순히 고백을 거절하기위한 핑계란 가능성도 있지만 글쎄, 송태섭이 아는 한 정대만은 그리 거짓말이 능하지는 않았다. 그렇다면 저 정대만이 짝사랑이라도 하고 있는건가? 저 강력한 인간 자석을 안통하는 인간이 있다면 한 번 보고 싶었다.
상대방의 뒷모습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그 자리에 서 있는 정대만을 태섭은 조용히 바라보았다. 
송태섭은 정대만을 짝사랑하고 있다. 
그 지경으로 서로 피터지게 치고 박고 이까지 날려먹고 했던 상대를 어떻게 좋아할 수 있냐고? 그건 내가 묻고 싶은 말이다. 태섭은 단전에서부터 기어올라오는 무거운 한숨을 어깨를 축 늘어트리며 내뱉았다. 여기에 이름을 갖다 붙이자면..그래, 첫사랑의 저주 같은거다. 그 날 옥상에서 그 길었던 첫사랑은 산산조각으로 박살나서 눈과 함께 녹아없어졌을터였건만 어딘가에 달라붙어 숨어있던 잔해가 어느샌가 슬금슬금 기어나와  심장에 콕 박혀버렸다. 정대만과 함께 코트에서 뛰는 시간이 길어지면 길어질 수록, 그의 손에서 떠난 농구공이 거침없이 링을 통과할 때마다, 그 잔해는 더 깊숙이 박혀들어가 정신차려보니 어떻게 손쓸 수 없는 지경이 되어있었다. 
체력이 고갈되어서 코트 위에서 비척이며 헐떡이는 모습마저 예뻐보일  지경이니 단단히 미쳤지 미쳤어. 누군가를 좋아하면 눈에 콩깍지가 씌인다더니 큐피트의 화살을 눈깔에 쳐맞았나보다.

[어이 송태섭. 숨어있지 말고 이제 나오시지?]

몇 번째일지 모를 한숨을 게워내고 있는데 별안간 커다란 목소리가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바람에 송태섭은 화들짝 놀라 들고 있던 쓰레기통을 엎을뻔 했다.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아씨 어떻게 알았지. 이런 눈치는 빨라가지고. 멋쩍어서 뒷머리를 박박 긁으며 천천히 정대만에게로 다가갔다. 대만은 싱긋 웃었다. 그 얼굴이 눈이 부셔서 태섭은 시선을 살짝 비꼈다.

[나 있는거 알고 있었어요?]

대만은 고개를 끄덕였다.

[너 요 전에도 그 전에도 있었잖아]

순간 크게 뜬 눈으로 정대만의 눈을 쳐다봤다가 바로 얼굴을 돌렸다. 뭔가 몰래 나쁜짓 했던걸 들킨 것 마냥 민망했다. 괜히 실내화 끝으로 바닥을 찼다.

[...알고 있었으면 장소를 좀 다른데로 옮기지 그래요]
[하하 그건 내 맘이고]

네네 어련하시겠어요. 슬쩍 노려보니 여전히 그의 얼굴은 웃고 있었다. 뭐가 그리 기분이 좋은건지 생글생글. 뭐 고백받은 입장에서는 기분이 나쁠일이 없긴 한가? 아직 한 번도 그런 경험이 없는 송태섭은 알 길이 없었다.  
고백을 몰래 훔쳐보던 것도 다 들킨 마당에 궁금한거라도 물어보자는 심산으로

[형 진짜 좋아하는 사람 있어요?]

 툭 내뱉듯 물었다. 예상치못한 질문이었는지 대만은 아무말 없이 태섭을 빤히 바라보며 눈을 크게 두번 깜빡였다. 

[니가 알아서 뭐하게?]
[그냥요. 궁금해서]

진짜 궁금한건 맞으니까.

[어, 있어]

짧고 간결하고 명확한 대답이었다. 태섭의 눈을 바라보는 대만의 눈빛은 또렷하고 흔들림이 없었다. 잔해가 달그락 거리며 심장을 긁어 생채기를 만들어간다. 아프다. 
그게 누군데요? 라는 물음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씹어삼켰다.  듣고 싶지만 듣기싫었다. 정확히는 무서웠다.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 무심한 듯 흐응 그렇구나. 고개를 한 번 끄덕이고 발걸음을 옮기려고 했다. 

[소각장까지 이 엉아가 같이 가주마!]

태섭의 목에 팔을 둘러오며 장난스레 무슨 선심쓰듯 말했다. 아 뭐래는거야. 팔을 내치려고 했지만 대만이 팔에 힘을 주어 버텼다. 희미하게 땀냄새가 섞인 섬유유연제의 상쾌한 향기가 태섭의 후각을 쓰다듬었다.

[쫌 가만 있어봐~ 태섭이 너 피부가 차가워서 이런 날 안고 있기 딱 좋단 말이야] 
[사람을 멋대로 죽부인 취급하지 마시죠? 난 덥다고요.]

진짜 덥다. 
맞닿은 살갗이 뜨겁다고 느끼는 것도 얼굴에 열이 오르는 것도 분명 다 이 빌어먹을 더운 날씨 때문이다.  라고 책임 전가를 하며.
날뛰려는 심장을 어금니를 꽉 깨물고 속으로 구구단을 외면서 진정 시키느라 머리에서 김이 날 것 같다.
너무 덥다.


〇●〇●〇


『초등학생?』

그게 첫 만남이었다.
준섭형을 제외하고는 처음으로 송태섭의 농구를 봐주었던 사람. 
짧은 1on1에서 준섭형과 겹쳐보였던 사람.
당황해서 말 없이 돌아가려는 태섭에게 또 보자고 해준 사람.
그 날 이후에도 그가 계속 머릿속에 맴돌았다. 
그러다가 딱 한 번 더 그를 만난 적이 있었다. 아니 만났다기보다는 길가다가 그가 친구들과 농구를 하는 모습을 우연히 보았다. 
눈에 띄기 싫어서 입고 있던 후드티의 후드를 깊게 눌러쓰고 그늘진 곳에서 바라보았다.
그는 무척 즐거워보였다. 플레이 내내 얼굴에서 웃음이 떠나질 않았다. 정말 태양같은 사람이라 생각했다. 뭣도 모르고 함부로 쳐다보았다간 눈이 타들어가버릴정도로 강렬한. 송태섭 자신과는 정말 정반대의 사람이었다. 
그가 살짝 뒷걸음을 치며 뛰어올랐다. 물흐르듯 자연스럽게 농구공을 쏴 올리는 유연한 손목의 움직임부터 깔끔한 포물선을 그리며 골대를 매끄럽게 빠져나가는 농구공까지 일련의 장면이 슬로우 모션처럼 천천히 송태섭의 머릿속에 각인 되었다. 그 나이 되어서 처음으로 '아름답다' 라는 형용사의 진정한 의미를 알게된 것 같았다. 저도 모르게 양손으로 철조망을 움켜쥐고 넋놓고 쳐다보았다. 농구공이 땅바닥에 떨어지는 소리와 함께 정신이 퍼뜩 들었다. 그가 이쪽을 바라보는 것 같아서 냅다 뛰었다. 심장도 함께 쿵쿵 뛰었다.
그 일이 있은 이후 틈만 나면 그가 떠올랐고 그 때마다 심장이 팔딱거렸다. 어린 마음에 혹시 심장에 병이 있는게 아닐까 남몰래 걱정도 했다. 
그 걱정은 한참 후에 해결 되었다. 같은 반에서 친해진 달재에게 슬쩍 물어보니 깜짝 놀라며 『태섭아 너 좋아하는 사람이 있었니?』라는 대답에 태섭은 더 놀랐다. 좋아하는 사람...속으로 되뇌이자 또 심장이 날뛰기 시작했다. 그 날 처음으로 몽정이란 걸 했다.  심장병 걱정(?)이 해결되고 나니 새로운 고민이 생겼다. 


〇●〇●〇


지금 생각해보면 나도 저 인간 자석의 희생자였어! 아니다 최대 피해자 아닌가? 뜬금없이 떠오른 과거의 주마등에 발끈하여 송태섭은 칫솔을 쥔 손에 힘을 주며 분노의 양치질을 했다.

한여름이어도 새벽은 좀 선선한 편이었다.
아침에 눈이 일찍 떠진 김에 후딱 준비해서 일찍 집을 나섰다.  아직 밤의 장막이 채 다 걷히지 않은 길을 걸었다. 평소 역으로 가는 길과는 다른 방향으로. 이윽고 철제 펜스가 둘러쳐진 농구 코트가 나타났다.  걸음을 멈추고 철조망을 가만히 움켜쥐었다. 그 때와 같은 위치 다른 높이. 철조망 너머 코트를 바라보았다. 자연스럽게 슛을 쏘는 정대만의 모습이 그려진다. 동작 하나하나가 아주 선명하게. 어렸을 적 기억과 다른 점이라면 슛을 성공한 정대만은 송태섭을 보며 눈부시게 환한 미소를 지으며 주먹을, 가슴을 부딪혀온다는 것이었다.
나는 지금도 여전히 이 철조망 밖에 서있는데.
태섭은 깊게 심호흡을 했다. 그 때처럼 냅다 달려서 도망칠 것인지. 이 철조망을 끊어버리고 저 코트로 달려들어갈 것인지. 자신이 선택한 행동에 대한 책임과 결과는 스스로가 감당해야한다는 것을 송태섭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손을 바지주머니에 찔러넣은 채 걸음을 옮겼다.






Posted by Bernard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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教室の窓の外に広がる空は昨日の土砂降りが嘘だったかのように高く綺麗な青色に輝いていた。たまにその上をのんびりと泳ぐ白い雲の欠片が余計真っ白く見えるほどに。窓側の一番後ろ席に座ってる宮城は頬杖をついて外の景色を眺めていた。
4時間目は数学だったが、担当の先生に何かあったのか教頭に呼ばれたらしく暫く自習とのことだった。真面目に勉強するやつ、集まって喋ったり笑ったりするやつ、ずっと寝てるやつ、と皆思い思いに時間を過ごしていて教室は少し騒然としていた。

「三井サン何してんだろ」

空を見上げてぼそっと呟いた。そりゃ授業中だろうけど。多分、いや絶対寝てる、かけてもイイ!とひとりでクスクス笑いながら宮城は青空を眺めていた視線を机の上に落とした。開きっぱなしの白いノートの上にシャーペンを滑らせる。

『三井寿』

何となく今頭の中を占領している人の名前を書いて小さく読んでみる。みついひさし。ただそれだけで胸の奥が甘く疼く。

「俺の名前はテストに出ねーぞ?」

いきなりすぐ隣から聞こえてきた耳に馴染む声に、はっ?となってそちらに顔を向けると教室の窓辺からひょっこりと今頭の中で絶賛沸騰中のその人が現れた。突然の登場に驚きのあまり心臓が口から飛び出そうになる。鼓動が早く鳴りすぎてヤバい。焦ってとにかくノートを閉じた。

「は?な、なっ、何でアンタこっちにいんの!?」
「自習。眠くなったから抜け出してきたわ」
「不良やめたんじゃねーすか?」
「うるせーな、いーだろ!どうせ勉強しねーんだし」

いや、少しは勉強してくださいよ。と呆れ顔で言う宮城に「はいはい」と適当に答えて三井は教室の中を見回した。

「ってお前のクラスも自習か?」
「そーすよ」
「で、何で俺の名前?」

あーやっぱ話戻すんだ。宮城がきまり悪い顔でそっぽ向いて「…いや…別になんとなくっす…」もごもごと話す様子を見つめていた三井は「お前耳真っ赤!」とニッコリと笑った。爽やかな笑顔が後ろに広がる青空とピッタリ似合いすぎて何かのCMでも観てる気分になる。
 
「お前俺のこと本当好きな」
「……そうだけど。わりーかよ」
「いーや。うれしいに決まってんだろ」

自分の頭を撫でようと伸ばされた三井の手を宮城は軽く避けながら「髪さわんなよ!」と睨みつける。
「いーだろ、減るもんじゃねーしよ」「いーや。減ります」「ケチ!」とくだらないプチ言い争いから自然とバスケの話になり部活とか試合の話で盛り上がる。三井とのこういう会話はためになるし何より楽しい。
「あ、そうだ」と何か思い出したのか三井が言い出した。

「な、宮城よ。腹減ってねーか?」
「え?まぁ、そこそこ」

そんなん聞いてどうすんだよって顔で首を傾げると三井は得意げな顔で上着のポケットから何かと取り出した。長方形の紙箱にはビターアーモンドチョコレートと書いてある。

「クラスのやつに貰ったんだけど、お前甘いの苦手でもこれなら食えんだろ」
「…まあ」

クラスのやつって何奴?なんでチョコなんか貰ってくるの?!と口に出しかけたが、寸前で踏みとどまる。まるで浮気疑惑でも問い詰めるみたいで格好悪いし、何よりそういうことじゃないのもわかってる。バレンタインデーはとっくに過ぎてるし、別に三井が悪いわけでもない。ただ頭ではわかってても感情はまた別なのだ。この人たらしめ…あの笑顔を他の奴らにも見せてるのかと思うだけでモヤモヤする。
人の気も知らずに当の本人は楽しげにに箱を開けていた。開けられた蓋からツヤのある焦げ茶色の丸々としたチョコを一粒摘んで「ん」と宮城に差し出す。
 こうなったら全部俺が食ってやる!とムキになったけど、表向きは何ともないふりして受け取ろうと手を伸ばしたが、ひょいと交わされた。何?怪訝そうに片方の眉毛を吊り上げて三井を見上げると悪戯っぽい顔でニヤニヤしている。

「はい、あーん」

再びそれが口元に差し出された。宮城はチョコと三井の顔を交互に見遣って短い溜息をつくと口を開きパクっと食いついた。カリッと奥歯で噛み砕くとほろ苦い甘さとアーモンドの香ばしさが口の中に広がる。 まあ、味としては悪くない。

「うまいか?」
「ん」

頷くと三井は満足そうに笑みを浮べ、また一粒差し出した。そうやって何個か食べさせられるうちに体温に溶けたチョコで三井の指先が汚れていくのをじーっと見ていた宮城が席から立ち上がってその手を掴み指を舐め始めた。2番目の関節からゆっくり舐めあげるとビクッと手が震える。三井はビックリして反射的に手を引っ込もうとしたが、びくともしない。力では宮城に勝てない。

「おっ、い、宮城やめっ」

舐めていた指先を口の中に含み優しく噛みながら視線だけ三井の顔に向けるとよく熟れたリンゴみたいに赤かった。
あーあそんな顔しちゃって。
解放してやると慌てて手を後ろに引っ込みまだ赤い顔で睨んでくる。

「何だよ急に!」
「三井サンって、本当にさ」

視線は三井に固定したままゆっくりと言葉を並べながら横に束ねてある白いカーテンのタッセルを解いてカーテンの端を掴み自分の後ろから反対側に引っ張る。即席で教室と遮断された空間が出来上がった。

「無防備っすよね」

片方の手で三井の後ろ首を掴んでは引き寄せ唇を合わせた。突然の出来事に三井が戸惑ってるのをいいことに少し開いてる唇を舐めてその割れ目に舌をねじ込ませた。前歯をじっくりなぞると緊張したのか三井の体が固まるのを感じた宮城は少し目を開けた。三井の手が細く震えてるのが見える。まだあの屋上での事を引きずっているんだろう。それが罪悪感なのか、ただの恐れなのかはわからないけど、宮城にとってはどちらでもよかった。今この瞬間この人の頭の中を自分でいっぱいにできるなら何でも。本当イイ性格してるよ、俺。こんなんでごめんね、三井サン。でも今日はアンタも悪い。そんなもん貰ってきてあんなことするから。
宮城がそっと三井の手を取り指を絡ませて握ると少し間を開けてぎこちないけど握り返してきた。
さらに深く入って舌を執拗に絡めて吸いつく。

「ん…ふ…ぁ……んっ」

時折唇の間から艶やかな吐息が零れる。ちゅうちゅっと唾液の濡れた音が漏れ出したがどうせ教室の中もうるさいし、バレねーだろ、と三井の口の中を気が済むまで舐め回して舌を擦り合わせた。ぬるぬると柔らかくて温かい感触が気持ち良くて酔ってしまいそうになる。
三井が肩で息をし始めた頃にようやく細い透明な糸を引きながら唇を離した。

「…ん…うっ……はぅ、みゃ、っぎ…はぁ…はっ……んっ」

やっと流れ込んでくる空気を必死に吸い込もうと肩を上下させながら潤んだ瞳がうっとりとした眼差しで宮城を見下ろす。その様子が可愛くて両手で頬を包みチュッと触れるだけのキスをした。

「あんまり煽んないでよ」

互いの息を感じられる程の至近距離で淡い色の目を見つめながら甘ったるい声で囁くと目を逸らされた。

「っ…こんなとこで盛りやがって」
「いやだった?」
「……べ…別に嫌じゃねーけどよ」

唇を尖らせてぶっきらぼうにそんなこと言うものだからまたキスしたくなったが何とか抑えた。
代わりに、

「これは没収」

三井が手に持っていたチョコの箱をやんわり奪い取る。

「知らないヤツからこんなの貰うの禁止な」
「は?知らないやつじゃねーし」
「俺が知らない」

拗ねた口調で言う宮城をきょとんとした顔で見つめていた三井はくすりと笑った。

「なにお前嫉妬か?」
「…そーだよ」

素直に答えた。隠したってしょうがないし、この気持ちが解決するわけでもない。

「アンタ無駄に顔いいし、声もそう。性格もそんなんだからみんなに好かれるだろ」
「そんなんってお前な」
「だから」

宮城は頭を下げそのまま三井の胸元に埋めた。ほんのり汗の匂いと柔軟剤の清涼感のある香りが混じった心地良い匂いが鼻腔をそっと撫でる。深く息を吸ってゆっくり吐いた。先からずっと心臓バクバクだ。

「つい焦っちまう」
「宮城…」
「引くよね。俺まじカッコ悪い」
「バーカ、なーに言ってんだ。引かねーよ」

三井は両手で宮城の顔を持ち上げて頬をつねった。「いひゃい」と頼りない声を零す彼にニッコリと笑ってみせて片方の眉に軽く口づけた。

「お前にも可愛いトコあんじゃん」
「んだよ、それ」
「なぁ宮城」

初夏の蒼天にも負けないキラキラな笑顔の三井が眩しくて宮城は目を細めた。こんな透明で綺麗な人が自分の恋人だってことがたまに信じられなくなる。

「大好きだぜ!これから毎日言ってやるよ。俺嘘すげー下手なの知ってんだろ」
「三井サン…」

宮城の目が見開く。
三井は拳を宮城の胸にぽんと軽くぶつけた。触れられたところから小さい熱が生まれる。

「だからもっと自分を信じろ。俺を信じろ」

真昼の太陽みたいに熱く眩しくて
夜空の一等星みたいに明るいけど繊細で優しくて
多分俺一生この人には勝てねーな、と宮城は吹っ切れた表情で小さく笑った。中から湧き上がってくる欲に従い、ひょいと窓を乗り越えて三井に抱きついた。

「俺もサボる」
「おう。じゃ屋上でも行くか」

教室の窓辺になびく白いカーテンをチラッと見遣ってから前を向いた。繋いだ手を優しく引っ張る恋人と共に青空の下を歩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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車を駐車場に停めて外に出た途端真夏の重苦しい空気が肺に流れ込んできて三井は大きく息を吐いた。

「アッチぃなー」

天気は快晴。透明な日差しに照らされ、たちまち玉の汗が吹き出る。眠気覚ましに噛んでいたガムをポケットティッシュに包んでゴミ箱に投げ入れてから空港の国際ターミナルへ足早に向かった。
開いた自動ドアから流れ出てくる空調の効いた涼しい空気に生き返る~とつぶやきながら中に入った。早朝なのにターミナルにはそれなりに人がいる。
ジャケットのポケットから携帯を取り出し時間を確認する。午前6時半。到着まではまだ2時間ほどある。
三井はどうすっかなーと少し悩んで、上りのエスカレーターへ向かった。出口でずっと待つのも落ち着かないし、そろそろ朝食の時間だし。カフェにでも入って適当になんか食うか。
それに何よりも、

「疲れたぁ」

肩を落としながら盛大にため息をついた。少し頭の中がぼーっとしてるのは暑さのせいではない。
昨日福岡での遠征試合後、打ち上げにちょっと顔だけ出してそのまま車を飛ばして空港へと向かってきたのだった。
12時間ぶっ通し運転はさすがにしんどいな、と三井は手の甲で額を擦りながら思った。
でも、だって。10か月ぶりに帰ってくる恋人の迎えは絶対自分が来たかったんだから仕方ない。
それに確かに疲れてるけど、2時間後宮城に会えると思うだけで自然と口元がほころぶ。
宮城に会いたい。一秒でも早く、その一心で徹夜で走ってきたんだから。

気のせいか少し軽くなった足取りで適当なカフェに入った。サラダにサンドイッチ、アイスコーヒーを頼んで窓際のカウンター席に座る。店の中は数人の客がぽつぽつと座ってるだけでどちらかというと閑散としていた。
12時間ぶりの食事に今までずっと空腹でふて寝していた胃が早く食いもん寄こせ!と騒ぎ立てる。とりあえずサラダから口に運んだ。サラダのドレッシングはさっぱりしてて口の中に広がる柑橘系の香りが暑い季節にピッタリだった。ゆっくりと目の前のものを平らげていく。最後の一口を咀嚼しながら大きい窓の外を眺める。遠くに見える滑走路にどこからか帰ってきた飛行機が着陸してるところが見えた。もうすぐあそこから宮城が帰ってくる。心臓が小さく跳ねた。
宮城に会ったらなんて言おう…とりあえず抱きしめて、やっぱここはおかえり、か?それとも会いたかった?うーんん…三井は小さく唸った。去年は泣いちまってなんも言えなかったんだっけ。
改めて思い出すとなんか一人恥ずかしくなって氷が解けて少し薄くなったアイスコーヒーを一気に飲み干した。いきなり大量に流れ込んできた液体の冷たさに体がブルっとする。お腹を擦りながら携帯を確認すると到着までまだ1時間ちょいある。そうだ、と三井は携帯を持って窓に向けて画面をタッチした。小さいシャッター音が鳴って目の前の風景が携帯の液晶に小さく切り取られる。L〇NEに切り替えてメッセージと共に写真を送った。

『待ってるぜ!』

何度もメッセージを打ち直して結局一言だけ送った。他は顔見て直接言えばいい。三井は携帯をテーブルに置いて頬杖をついてグラスに挿されたストローで溶けかけの氷を弄った。あと1時間。こういう時の時間って過ぎるのおせーんだよな。軽くため息をつく。待つのは嫌いではないけどやっぱり早く会いたいって気持ちが強くて余計時間を遅く感じる。今日はとりあえず宮城を実家に送り届けてやってそんで明日からは一緒にいられる。何しよう、あいつ久しぶりの帰国だし、先ずは…
色々考えるうちに瞼が段々重くなってくる。襲ってくる睡魔に抗おうにも徹夜の運転で疲れた頭では到底無理だった。

◇◆◇◆◇

飛行機は到着予定時刻より30分ほど遅れて空港に着陸した。

「くそ、いっつも到着遅れるし、予定時刻って意味なくね?!」

ぶつぶつ文句を言いながらキャリーケースを取り、急いで出口へと向かった。出口を出た宮城はサングラス越しに周りを見渡す。誰かのお迎えに来たであろう人達が結構いたが、

「いない…」

三井はいなかった。さっき到着してネットが繋がったとき確認したメッセージには待ってるってあったし、空港の写真も一緒だったからこっちにいるはずなのに。もしかしてトイレかなと思い、宮城は暫く出口の近くで待ったが三井は現れなかった。
おかしいと思ってメッセージを再度確認する。窓ガラスの外に見える飛行機と滑走路、あとは画面の端っこに写ってるストローの挿さったグラス。それらから推測するに、窓際にカウンター席のあるカフェという結論に至った宮城はもしかしてと思ってまずは店を探し始めた。 特徴が一致する店は2箇所しかなくすぐ大きい背中を見つけた。どうやらカウンターにうつ伏せで寝てるようだった。

「だから来なくていいって言ったのによ」

小さくため息を零す。
到着の前日福岡で試合があると聞いて迎えはいいっすよ。って言ったのに。この人ってばダメ、絶対に行くということ聞かないし。本当そういうところは頑固なんだよな。律儀っていうか。 もちろんお迎えはすげー嬉しいけど無理してほしくなかった。
キャリーケースを持ち上げで三井に近づいてそっと隣に座った。すうすうとよく寝ている。まあ、疲れただろうな。サングラスを頭にかけて同じくうつ伏せになって三井の寝顔を覗き込む。自分の腕を枕にして横向いてる三井の寝顔はどこか少年のように幼く見える。10か月ぶりに見る恋人の顔が寝顔っていうのも新鮮でいいかも、と宮城はそれを眺めながら思った。
手を伸ばし三井の頭を優しく撫でる。

「頭ちっちぇー」

本人が聞いたら「お前がそれ言う?」とツッコまれるだろうなーと宮城は小さく笑った。撫でていた触り心地の良い髪から手を動かして耳たぶに触れる。あたたかく柔らかい肉の感触が楽しくて弄り続けた。

「へぇ、くすぐってーよ、みゃぎぃ」

急にへへっと笑いとともに舌たるい言葉が小さく開いた三井の唇から零れ出た。
アンタ何勝手に夢の中の俺といちゃついてんだよ。本物はこっちだっつーの!とか心の中でツッコミながらも寝言で自分の名前を呼びながらにっこり笑う恋人がそれはもう可愛くて可愛くて脳が痺れそうになるくらい愛おしい。
宮城は今にも食っちまいたい欲望を抑えつつ、ずっと触っててちょっと赤くなってる耳に顔を近づけた。

「三井さん、朝っすよ~。起きないと」
 
耳元で低い声で優しくささやく。指で三井の顔をなぞるとくすぐったいのか、眉間を寄せるのかと思いきやまたぷふっと笑って、

「リョぉたぁ…あと5分…だけ…」

と甘えるような声で寝言を言う。その瞬間、宮城の心臓が騒ぎ出した。
なっ?!ちょ、ちょちょ、ちょっと!
起こしてびっくりさせようとしたのに返り討ちにされてしまった宮城は、顔はもちろん首までものの見事に真っ赤に染まった。
この人って本当…

「…ずるいよ、もう」

俯いて頭を掻く。
この人っていつもは宮城と呼ぶくせにベッドの上の時だけリョータって名前で呼ぶ。何でって聞いたら「なぜって…俺がそうしたいからだよ」とにんまり笑ってた。そのおかげで不意打ちを食らった今顔だけでなく下の方も爆発しそうだった。んだこれ、俺パブロフの犬かよ?!溜息か深呼吸かわからない大きく深い息を何度も繰り返して、

「ハああぁーくっそ。覚えてろよ」

宮城はまだ少し赤い顔で静かに復讐(?)を誓った。何とか落ち着かせていると隣で動く気配がする。

「っ…んん……?宮城……?」

視線を向けるとまだ眠気の取れてない色素の薄い瞳がこちらを見上げていた。2回瞬きをしてやっと眼の前の人物が宮城と認識したのか、三井の頬が緩み満開した向日葵みたいな明るい笑顔が咲いた。寝ていたせいかいつもより暖かい手が宮城の頬に添えられる。落ち着いたばかりの心臓がまた大きく跳ねた。

「おかえり」

甘い声が耳をくすぐる。
宮城は頬に添えられた恋人の手を取り手のひらに軽く口づけた。

「ただいま、三井サ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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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각사각ㅡ]

새하얀 종이 위를 달리는 은빛 펜촉의 리듬감 있는 발자국 소리가 가벼운 침묵 위를 아슬아슬하게 내달린다. 거기에 발맞추어 검은색 잉크선이 때론 곡선을, 때론 직선을 그리며 비로소 자신의 존재의 의미를 부여받는다. 커다란 손이 쥐고 있는 매끈한 검정색 바디의 만년필이 그 움직임을 멈추었을 때 나도 모르게 새어나오려던 아쉬움 찬 한숨을 가까스로 집어삼켰다.

“おい、ジャン、ちゃんと見てたのか?”
“うん?...あ、もちろん。それにしてもあんた、ホント綺麗な字書くんだな。
“ふーん、そうか?まあ、普通だろう。”

―あ、はいはい。俺は普通以下ですよ―

언젠가 백지수표에 만년필로 싸인을 하는 루키노의 모습에 반해서..

―俺もそうなりたいなーって思ったんだけどな

“ほら。”

루키노는 한쪽 뺨을 움직여 가볍게 웃으며 새 종이와 쥐고 있던 만년필을 내게 건넸다. 받아 쥔 만년필은 아직 루키노의 체온이 남아있어서인지 희미한 온기가 손가락을 통해 느껴졌다. 오른손에 어설프게 만년필을 쥐고 눈앞에 놓인 하얀 종이를 멍하게 내려다보았다.

“おい、どうした?”
“あ、いや、何書こうかなーって。”
“別に何でもいいだろう。そうだ、まずは自分の名前から書いてみたらどうだ。”

「そうだな」하고 고개를 끄덕이며 펜촉의 끝을 종이위에 내딛었다. 딱히 글을 못읽고 못쓰는건 아니다. 어느쪽이냐면 이 만년필이다. 아무리 해도 만년필에는 손이 익지 않는 것이었다. 지금처럼…

“ああっ!”

위태위태하게 선을 이어가던 검은 잉크가 아니나다를까 검은 블랙홀을 만들어내었다. 간신히 적은 삐뚤빼뚤한 글자를 집어삼키듯 퍼져가는 검은 잉크의 웅덩이를 보며 짧은 탄식을 토해냈다. 머리위에서 작게 공기를 내뿜는 소리가 들린다.

―ヤロウ!笑いやがって...くそ、まだまだ!

만년필을 고쳐쥐고 다시 종이위로 펜촉을 움직였다. 하지만 곧 몇자 못가서 다시 검은 웅덩이 속으로. 또다시 세번, 네 번, 다섯번… 하얀 종이는 어느새 온통 검은 반점으로 얼룩져있었다. 덩달아 내손가락도 새까맣게 물들었다.

“おいおい、酷いもんだな、これは。”

옆에서 내려다보고 있던 루키노가 웃음기 섞인 말을 내뱉으며 어깨를 으쓱했다. 그런 그를 잠깐 흘겨보곤 책상에 놓여져있는 얼룩덜룩해진 종이를 휙 밀어버리고 풀썩 엎드려 버렸다. 매끄러운 책상에서 풍기는 고급 원목의 향긋한 향기가 코끝을 간지럽힌다. 일부러 성대하게 한숨을 내쉬고는 고개만 옆으로 돌려 그를 올려다보았다.

“ハァ―――――やっぱ、ダメなのかな~”
“バーカ。何言ってるんだ。”

커다란 손이 다가와 내 머리카락을 헝클어뜨리며 슥슥 쓰다듬는다. 넓은 손바닥에서 느껴지는 온기의 포근함이 기분 좋았지만 동시에 어린애 취급을 받는 듯한 느낌이 마음에 들지 않아,

“やめろよ。髪型メチャクチャになるだろう。”

라고 입으로만 불평을 하며 삐죽거렸다. 직접 손을 뿌리치지 않는 것은, 실은 좀더 쓰다듬어주길, 좀더 만져주길 바라는 내가 있기 때문이란 것은 충분히 인지 하고 있다. 하지만 그런 '나'를 허락해버리면 루키노와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나아가 CR:5를 이끌어나갈 멋진 '남자'가 되기 위한 원대한(?) 계획이 깨져버릴 것 같았다. 이미 알렉산드로 오야지로부터 보스의 지위를 물려받은 상태이긴 하지만 아직 많이 부족하다는 건 스스로도 잘 알고 있었다.

―だから、せめて甘えるのは夜だけってことで

속으로 결심을 곱씹고 있는 사이에 어느새 머리위에 얹혀져있던 손의 감촉이 사라져있었다. 허전함에 입맛을 다시며 고개를 살짝 들자 다시 은은한 시트러스 향과 함께 어두운 와인빛의 코트가 다가왔다.  

“手出せよ、汚れてるだろう。”
“あ...”

뭐라고 대답하기도 전에 루키노는 검은 잉크가 곳곳에 묻어있는 손을 잡아끌어 자신의 손위에 올려놓고 다른 손에 들고 있던 물에 적신 하얀 손수건으로 손가락 하나하나 어루만지듯 천천히 닦아내어갔다. 보드라운 손수건 너머로 느껴지는 단단한 손가락이 피부에 닿는 곳 마다 조그마한 열기를 심어간다. 그렇게 하나둘 모인 열기가 하나의 흐름이 되어 가슴속으로 흘러들어와 심박수를 급격하게 늘여갔다. 

“インクじゃなかったら舐めて綺麗にして差し上げたのに、な。”
“...変態。”

휙 반대편으로 고개를 돌려버렸다. 발갛게 상기되어있을게 분명한 얼굴을 보이기가 왠지 쑥쓰러웠다.
「ハハ、何照れてんだ?」라는 말과 함께 시원한 웃음소리가 뒷통수로 날아들어왔지만, 「うるせ」라고 대꾸하며 여전히 고개를 돌린채. 하지만 한쪽 손은 여전히 그에게 맡긴채.

“もっと。”
“うん?”
“もっとゆっくり進んでもいいんじゃないのか?”

고개를 돌려 루키노를 바라보았다. 가을 저녁 하늘의 붉은 노을빛을 연상 시키는 붉은 빛을 띈 눈동자가 가만히 내 눈을 응시한다. 그리고는 곧 근처의 여성을 100명 정도는 가볍게 쓰러지게 할 근사한 미소를 지어보이며, 내 손 대신 검은 얼룩으로 범벅이 된 손수건을 코트 포켓에 넣고는 내 손을 가볍게 쥐어 들어올렸다.

“やっと綺麗になったな。本当、手の掛かるお姫様だ。”

고개를 숙여 내 손등 위로 그 단정한 입술을 떨어뜨려 '쪽' 소리가 나게 키스를 했다. 짧은 순간이지만 손등에 닿는 촉촉한 입술의 감촉은 세상의 그 어떤 미약(媚薬)보다 더 달콤하고 아찔하게 온몸의 신경을 자극해온다. 예민해진 감각이 희미한 숨결에도 반응해서 심장의 박동을 부추겼다.

“ところで、ジャン。お前最近…”

그때,'똑똑' 하는 노크 소리가 방안에 울려퍼졌다.

「失礼します。カポ。シニョーレ・グレゴレッティはいらっしゃいますか?」

문 넘어로 들리는 목소리에 루키노는 짧게 혀를 차며 대답했다.

“いる、入れ。”

쥐고 있던 내 손을 가만히 내려두고 루키노는 성큼성큼 문으로 다가갔다. 문을 열고 들어온 루키노의 부하로 보이는 남자는 내게 허리를 굽혀 정중히 인사를 하고나서 루키노에게 나지막한 목소리로 뭔가 얘기하기 시작했다. 루키노는 얘기를 들으며 몇번 고개를 끄덕이더니 내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ジャン、ちょっと行ってくる。”
“ああ。俺も一緒に行った方がいいか?”
“いや、そんな大したことじゃない。すぐ帰ってくるからお前はそれ、練習でもしていろ。”

그는 턱으로 만년필과 종이를 가리키며 한쪽 눈을 찡긋했다. 

“わ、わかったよ!早く行ってこい。”

시선을 홱 피하며 퉁명스럽게 내뱉었다. 그런 나를 보며 그는 가볍게 웃음을 짓더니 세련된 동작으로 허리를 숙이며,

“それではカポ、行って参ります。”

조금 과장된 한마디를 남기고 부하와 함께 밖으로 나갔다. 덜컹 문닫히는 소리와 함께 뚜벅뚜벅 구두소리가 점점 멀어져감에 따라, 조금씩 심장이 제 리듬을 되찾아가고 있었다.

―ふう~、まったく身が持たねーな。いろんな意味で。そういえば、ルキーノ、先何言おうとしたんだろう

어깨를 으쓱하며 의자에 등을 기대어 깊숙히 몸을 묻었다. 적절한 푹신함이 몸을 폭 감싸는 느낌에 무의식중에 편안한 한숨이 훅 세어나온다. 새삼스럽지만 집무실 안을 찬찬히 둘러보았다. 데이반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절경의 스폿에 자리 잡은 이곳은 CR:5의 새 아지트의 보스 집무실이다. 보스가 된지 몇개월인가 흘렀지만.. 아직도 이 의자가 내 자리라는 게 실감이 안난다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었다.

「もっとゆっくり進んでもいいんじゃないのか?」

“ゆっくり......か。”

루키노의 말을 속으로 되뇌이며 무심결에 옮긴 시선끝에 하얀 종이와 검은 만년필이 비쳤다. 

“仕方ない、練習でもするっか。”

몸을 일으켜 마악 만년필을 집으려던 찰나, 난폭한 구두소리가 들리더니,

[쾅쾅쾅ㅡ!]

노크를 하는건지 발로 차는건지 모를 요란한 소리를 내며 문이 흔들렸다. 이런 짓을 할 녀석은 하나밖에 없다.

「おい、ジャン。いるんだろ?」

―ほら、やっぱり

“うるっせな!入れよ。”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콰당하고 거침없이 양쪽으로 문을 열어재끼며 이반이 집무실 안으로 들어온다.
시선으로 슥 방을 훑어 데스크에 앉아 있는 나를 발견하곤, 삐딱한 걸음으로 다가왔다. 데스크 넘어로 마주선 이반은 흥 하고 콧방귀를 뀌며 비아냥거리듯 말했다.

“ふん、いいご身分なこった。このやろ。”
“言ってろ、バーカ。何しにき……あ。”

―そういえば、こいつ...


▷만년필 습자 연습 지도를 부탁한다
▶그냥 혼자 한다


―いいや、やめとこ。あいつ他人に何か教えるの下手そうだし、それにからかわれるのがオチだ

“で?どうしたんだよ。”
“この前、頼んでたヤツ手に入りそうだぜ。”
“え?!マジ?!”

비스듬히 손등에 괴고 있던 얼굴을 대뜸 들어 이반을 쳐다보았다. 이반은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콧바람을 가볍게 내뿜었다.

“へえ~お前もたまには使えるんだな。”
“んだと、コラッ!!!!ハ~ン、さてはもう必要ないんだな?”
“いやだな~こんなんで拗ねちゃって!イヴァン様ったらぁ~”
“うるせ!!!”

뭐 씹은 표정으로 이쪽을 노려보는 이반을 얼굴을 보며 속으로 풋.

―やっぱりからかい甲斐があるんだよね、こいつ

“まあ、冗談は止して、ありがとう、イヴァン。いつ頃手に入りそう?”
“ふん。明後日取りに来な。”
“了~解!イヴァン、本当ありがとよ。”
“わかりゃいい。そんじゃ。”

이반은 등 돌려 문쪽으로 터벅터벅 걸어가며 한손을 들어보이곤 집무실을 나갔다.
콰당 문닫히는 소리와 함께 구두소리가 멀어지며 다시금 집무실안에 침묵이 찾아왔다. 집무실 한쪽 구석에 서있는 안티크풍의 괘종시계의 초침이 질서정연하게 자아내는 시각[時刻]의 숨소리만이 조용히 쌓여간다. 가볍게 숨을 내쉬며 만년필을 쥐어들었다.

“よーし!まずは名前から!”

일부러 소리 내어 말하며 펜촉 끝을 종이에 부딧혔다.



.

.

.



“思ったより時間が掛かってしまったな。”

코트의 포켓에서 플라티나제의 회중시계를 꺼내든 루키노는 낮게 중얼거리며 발걸음을 재촉했다. 아지트 건물 입구를 들어서자 저쪽에서 이반이 걸어오는 것이 보였다. 순간 루키노의 미간이 살짝 좁혀졌다. 원래부터 이반에 대해 그리 탐탁치 않게 생각했었지만, 요즘 들어서 부쩍 눈에 거슬리던 참이었다.

“ン?何だ、お前か。なにこんなとこで突っ立てやがんだ?”
“…いや、何でもない。”
“ふん。”

이반은 양어깨를 으쓱하며 루키노의 옆을 지나치려다가,

“あ、そうだ。”

발걸음을 멈추었다. 루키노는 고개를 옆으로 돌려 이반을 내려다보았다.

“一応言っとくけど、ヤツと俺、なーんにもないから。”
“…何のことだ?”
“はっ!惚けやがって!もうバレバレだっつんだよ。こそこそ尾行なんかさせやがって!”
“……”
이반의 말에 루키노는 아무런 반론도 대꾸도 하지 않았다.

“やつは事情があって俺の仕事をちっと手伝ってただけだ。ま、テメエが何考えているかは知ったこっちゃねーがな。そもそも俺はテメエらみてーなくそホモやろじゃねーし?”
“……”
“今度またあんなマネしてみやがれ。バラして海にぶっこんでカニの餌にしてやら!”

내뱉듯이 말하곤 양손을 바지 주머니에 푹 꽂은 이반은 다시 걸음을 옮겼다. 장대처럼 가만히 서있던 루키노는 몸을 돌려 막 입구를 나가려는 이반을 향해 천천히 입을 땠다.

“イヴァン。”
“あ?”
“すまなかった。”
“抜かせ、タコ。謝るくれーならはじめっからすんナ!”

빠른 걸음으로 아지트를 나가는 이반의 뒷 모습을 바라보던 루키노의 작은 실소를 흘렸다. 습기를 머금은 미적지근한 바람이 흩트리고 지나간 붉은빛 머리카락을 쓸어넘기며 아지트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俺もまだまだバカだな。”

자조띈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하지만 그 표정은 어딘가 모르게 개운해보였다.



.

.

.



[똑똑-]

매끈한 짙은 적갈색의 원목문이 경쾌한 노크소리를 내며 흔들렸다. 하지만 안에서는 아무런 반응도 없다. 의아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 하며 루키노는 재차 노크를 했다. 여전히 안에서는 무반응. 뇌리를 휙 스치고 지나가는 불길한 생각에 황급히 문을 열어재꼈다.
그리고 곧 눈앞에 비쳐든 모습을 보며,

“このヤロ......人には心配させといて。”

안도의 한숨과 함께 불만 담긴 목소리로 내뱉듯 중얼 거렸다. 그리곤 성큼성큼 큰걸음으로 데스크에 엎드려 자고 있는 쟝에게 다가갔다. 노크 소리도 문 열리는 소리도 못들었는지 규칙적으로 어깨를 달싹이며 새근새근 편안한 숨소리를 내고 있다. 바깥세상은 무겁고 미지근한 바람이 숨쉬는 것 마저 짜증스럽게 하는 무더운 날씨였지만, 에어컨의 은총을 받고 있는 이 집무실은 그야말로 별세상.  조용하고 나른한 오후, 수마[睡魔]의 유혹에 빠져 꿈의 바다를 허우적대기엔 더할나위 없이 좋은 조건이리라.

“まったく...よく寝てるな。そういや、昨日あんまり寝られなかったか。”

처음에는 깨울 요량이었지만, 곤히 자고 있는 쟝을 보니 역시 좀 망설여지는지 루키노는 어깨를 흔들어 깨우려고 뻗었던 손을 다시 거두어들였다.

“もうちょっと寝かせてやるよ。お姫様。”

루키노는 손등으로 쟝의 하얀 뺨을 조심스레 쓰다듬더니 코트를 벗어 어깨를 덮어주었다. 뭔가 즐거운 꿈을 꾸는지 살짝 미소를 띈 쟝의 잠든 얼굴을 보며 당장이라도 그 붉은 입술에 키스 하고 싶은 충동을 애써 누르며 발걸음을 옮기려는데,

[부시럭-]

뭔가 가벼운 것이 그의 발끝에 걸렸다. 뭔가 싶어 내려다보니 둥글게 구겨 뭉쳐진 종이뭉치였다. 구겨진 주름 사이로 거뭇거뭇한 것이 내비치는 것이 글자인듯 보인다. 그런 종이 뭉치들이 몇갠가 데스크 주변 바닥에 뒹굴고 있었다. 루키노는 별 생각 없이 발끝에 채인 종이 뭉치를 주워들어 펼쳤다. 「Luchino Gregoretti」아까 봤을때와는 달리 번진 자국 없이 꽤 깔끔해진 글씨체로 빼곡히 그의 이름이 적혀 있다.  다른 사람이 이렇게 열심히 자신의 이름을 적어놓은 걸 보고 있자니 좀 낯간지러운 느낌이 들어 시선을 돌리려는데, 종이 아랫부분에 이름이 아닌 다른 글이 적혀 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まだ、聞いていない」
「まだ、聞けない」
「俺は…」

거기에서 끊겨 있었다. 루키노는 조금 복잡한 표정으로 아직 깊은 잠에 빠져있는 쟝의 얼굴을 한번 쳐다보더니 바닥으로 고개를 돌렸다. 아직 몇갠가 바닥에 떨어져있는 종이 뭉치들을 하나씩 주워들어 주름을 펴들더니 구깃구깃한 종이들을 한손에 들고 데스크에서 조금 떨어져있는 카우치로 조용히 걸음을 옮겼다. 그는 깔려있는 새하얀 모피융단 위로 깊게 몸을 묻고 손에 들고 있던 종이를 한장씩 천천히 읽어내려가기 시작했다.


괘종시계의 초침 소리와 쟝의 자는 숨소리, 그리고 간간히 종이의 부시럭 거리는 소리만이 넓은 집무실을 채워간다.



.

.

.



어디선가 풍겨오는 시원한 시트러스향의 향기가 코끝을 가볍게 쓰다듬는다. 익숙한 향기에 깊숙이 숨을 들이마셨다.

―あったかい…

몸을 폭 감싸고 있는 포근함이 기분 좋아 좀더 잠을 청하려 했지만 이미 잠에서 깨어버린 뇌가 어서 눈을 뜨라고 재촉해대는 통에, 아쉬움에 입맛을 다시며 천천히 눈꺼풀을 들어올렸다.

―寝ちゃったのか…

아직 멍한 머릿속으로 추스리며 엎드려 있던 상체를 일으켰다. 계속 엎드려서 잠들어 있던 탓에 뻐근해진 목을 주무르며 주위를 휘 둘러보았다. 전면 유리창을 통해 비쳐드는 붉은 노을빛에 집무실 안도 발갛게 물들어있다. 창밖으로 노을진 하늘을 바라보며 길게 하품을 뱉어냈다.

―もう夕方か。ずいぶん寝たな……うん?

그제서야 어깨에 뭔가 걸쳐져있는걸 깨달았다. 코트다. 익숙한 향기가 은은하게 배여있었다.

―ルキーノのコート……え?

다시 주위를 둘러보는 시선이 카우치에 앉아 있는 거구의 남자를 포착했다. 비쳐든 노을빛이 남자의 붉은 머리칼을 더 선명한 붉은 색으로 물들였다. 붉은 빛이 만들어낸 음영에 시원시원하게 조각된 또렷한 이목구비가 더욱 그 남자다움을 돋보이게한다. 그도 이쪽의 시선을 느꼈는지 손에 들고 있던 하얀 종이 뭉치를 내려놓으며 싱긋 미소를 지어보였다.

“起きたのか、ジャン。よく寝ていたな。”
“よう、おはようさん。”
“ハハ、ずいぶん遅いおはようだね。”

미소로 답하며 쭉 기지개를 폈다. 뼈마디가 뚜둑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목을 좌우로 흔들던 중, 문득 루키노의 손에 들려있던 종이가 머릿속에 걸렸다. 자기전에 만년필로 글쓰기 연습을 했던 종이→연습하면서 썼던 글자들→처음에는 이름만 쓰다가..→??!! 까지 떠올린 나는 어떤 '사실'을 깨닿고 나도 모르게

“えっ???!!! アンタそれ読んだのかよ??”

목소리를 높였다. 루키노는 여전히 미소를 띄운채, 무슨 말이냐는 듯 일부러 어깨를 크게 으쓱였다.

―あのヤロウ、絶対見てる!!! チクショウ、しら切りやがって!!!

종이에 적었던 가지가지의 문장들이 하나씩 머릿속에 떠오르며 점점 뺨이 뜨겁게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루키노를 노려보던 시선 조차 부끄러워져서 고개를 휙 돌려버렸다. 양손으로 머리를 부여잡고 책상밑으로라도 기어들어가고 싶은 기분이었다. 

―俺のバカバカバカバカばか馬鹿!! なんであんなの書いちゃったんだ!!!

처음에는 내 이름과 루키노의 이름을 번갈아서 적다가, 점점 만년필이 손에 익숙해지니 신이 나서 '이것저것' 적다보니ㅡ주로 루키노에 관한 것들이었을거다ㅡ나도 모르게 감상적이게 되어버려서...
 
―恥ずかしい…

이 난관(?)을 어떻게 헤쳐나갈까 고민에 빠져있는 나를 아무말 없이 바라보던 그가 입을 열었다.

“ジャン、こっち来い。”
“え?”

반사적으로 소리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가 황급히 다시 시선을 피했다. 빨갛게 상기되어있을게 분명한 얼굴을 보여주는 건 역시 싫었다. 우물쭈물하는 내게 그는 부드럽게, 하지만 또박또박하게 말했다.

“ほら、ジャン。早くこっちオイデ。”
“……っ…”

루키노의 목소리에는 거역할 수 없는 무언가가 있다. 할 수 없이 시선은 여전히 딴곳을 향한채 미적미적 걸음을 옮겼다. 그와중에도 무슨 말을 어떻게 꺼내야할지 머리를 굴려보았지만 좀처럼 해답이 보이지 않는다. 밍기적거리는 내가 답답했는지 짧게 혀차는 소리가 들리는가 싶더니,
 
“う、うわわっ!!!”

갑자기 다가온 커다란 손이 내 한쪽 팔을 잡아 확 끌어당겼다. 강한 힘에 이끌려 순식간에 카우치앞에 도달했지만 끌려오다시피 하는 바람에 발을 헛디뎠다. 앉아 있는 루키노쪽으로 몸이 급히 기울어졌지만, 넓고 다부진 가슴이 여유롭게 받아준다. 화악 다가온 향수의 향기와 거기에 미미하게 섞여있는 체취가 후각을 통해 몸속 깊숙한 곳에서 반응을 일으킨다. 화악 달아오르는 느낌에 급히 상체를 일으키려고 했지만 금새 그의 팔안에 갖혀버렸다. 심장 박동 소리 마져 들릴만큼 가까운 거리가 안절부절 못하게 만든다. 혹자는 이제와서 뭘 새삼스럽게.. 라고 할지 몰라도, 지금 내 심리 상황이 상황인 만큼 어쩔수 없다. 

“ちょっと、ルキーノ、放せってば。”

루키노는 빠져나오려고 바둥대는 내게는 전혀 개의치 않고 허리에 팔을 둘러 끌어당기더니 내 가슴께에 얼굴을 묻었다. 얇은 셔츠넘어로 느껴지는 그의 숨결이 간지럽다. 가슴에 전해지는 기분좋은 체온이 여러 감정이 뒤섞여 혼란스러운 마음을 다독여주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나는 가볍게 심호흡을 했다.

“な、ルキーノ。あれ…あの紙に書かれたのは全部その、うそ、だから忘れてよ。”
“……”

겨우 한다는 말이 그거냐! 며 나는 속으로 스스로를 경멸했고, 그는 아무런 대꾸 없이, 다만 허리를 안고 있는 팔에 조금 힘을 더할 뿐이었다. 그렇게 잠시동안 침묵. 이윽고 그가 입을 열었을 때, 내 등은 조금 땀에 젖어있었다.

“前、お前に言ったよな。もっとゆっくり進んでもいいんじゃないかって。”
“あ、う、うん。”
“だからさ、俺にももうすこし時間をくれないか。”
“ルキーノ……。”

그의 목소리가 조금 갈라졌다. 그런 그에게 왠지 미안한 마음이 들어 상체를 낮추어 그의 목에 양팔을 둘러 살포시 끌어안았다. 따뜻한 체온과 함께 그의 숨소리가 귓가를 간지럽혔다. 루키노의 표정을 볼 자신이 없어 손으로 그의 뺨을 더듬어 눈을 감은채 입술을 포개었다. 입술을 살짝 핥자, 금새 입술이 열려 내 혀를 받아들인다. 내쪽에서 먼저 키스를 해본 적이 별로 없는 탓에 늘 루키노가 내게 하는 대로 흉내를 내보려고 했지만 역시 미지의 영역(?)에 걸음을 내딛는 것은 쉽지 않았다. 그의 속으로 들어가긴 했지만 어떻게 움직여야 좋을지 망설이고 있는는 나를 느꼈는지 살짝 웃는 듯 하더니 자신의 혀를 움직여 얽어맨다. 강하게 빨아대는 통에 조금 호흡하기 힘들었지만, 순순히 그의 움직임에 모든 것을 맡겼다. 심장박동이 빨라지며 온몸이 녹아버릴듯 뜨거워졌다. 노을에 붉게 물든 집무실에서 이런 행위를 하고 있다는 배덕감이 더욱 몸을 달아오르게 한다.
숨이 턱까지 차올랐을때 루키노의 입술이 은색실을 만들며 천천히 떨어졌다. 목으로 흘러내린 투명한 타액을 핥아올리는 느낌이 간지러워 나지막하게 웃으며 말했다.

“待ってるよ。”
“うん?”
“待っててあげる。でもその間に他にヤツに取られちゃうかも知れないけど?”
“ハハ。それは注意しないと。首輪でもはめようか?それともどっかの塔に監禁する手もあるな。”
“言ってろ、ボケ。” 

키득키득 웃으며 다시 그의 입술에 가볍게 입을 맞추었다. 그런 나를 루키노는 강하게, 하지만 부드럽게 안아주었다. 오감으로 느껴지는 그의 체온이, 체취가, 그의 존재가 너무나도 소중해서, 목까지 올라온 '말'을 겨우 삼키며 그의 목에 얼굴을 묻었다. 소리 없이 마음속으로 되뇌이며

―愛してるよ、ルキーノ


.
.

「それにしても本当によく寝ていたな」
「そ、それは、アんたが遅いから寝ちまったんだろうが...」
「ハハ。じゃ、今夜は徹夜でやってもいいよな?」
「なっ、ダメだ!徹夜は...その、か、体に悪い!」
「今日くらいいいだろう」
「よくも’今日くらい’って言えるよな。このケダモノが!」
「お姫様はそのケダモノが好きなんだろう?」
「う、うるせっ!」



―愛してる
今にも言ってしまいそうなこの言葉...でも言わない。
アンタが言ってくれるまでは。だから待ってやるよ。


―愛してる
まだお前に言えない言葉。
それを言ってしまうとお前もまた俺の傍から居なくなるんじゃないかって怯えている弱い自分がいる。
いつか一千輪の赤い薔薇の束を持って堂々とお前に言えるその日まで、ずっとこの腕の中に居てく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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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옛적에 썼던 썰 백업.

1-2 왜 쓰다 말았어?? 과거의 나야

Posted by Bernard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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今日は三井の誕生日だ。自称晴れ男の誕生日らしく窓の外の空はどこまでも高くきれいな青で沖縄の海を思い出す。
少し開いた窓から入ってくる風がからっとしていて気持ちいい。
 
「ね、三井さん。別れようか」
 
そんな爽やかな朝の風景にふさわしくない言葉を宮城は口にした。まるで飯何食べよっかと聞いてるような平坦な口調で。
向こう側に座ってトーストを齧っていた三井の手が止まった。丸くなった目で宮城の顔を窺う。オリーブ色の瞳が朝日に照らされちょっと金色を帯びていてとても綺麗だと感心しながら静かにその視線を受けとめた。
 
「は?お前急に何言って…」
「ごめん。ちょっと言葉が足りなかった。」
 
耳の後ろを掻きながら軽く息を吐いた。
 
「俺と別れるチャンスをやる。プレゼント」
 
一体何を言ってるんだこいつはと三井はきょとんとした顔で宮城を見つめた。まあ、わけわかんねーだろうな。宮城は視線をはずして考えを巡らせた。

...

先日三井を迎えに行った時だった。チームメイトに頭をわしゃわしゃされながら楽しそうに笑い合う三井の姿を見た時、ぐッとどす黒い何かが込み上げてくるのを感じた。懐かしくもおぞましい感覚。それが何なのか宮城はよく知っていた。飲み込まれる前に奥歯で強く嚙んで飲み込んだ。これじゃ前と同じじゃん。5年間全然成長してねーのかよ俺。
そんな自分にイライラしたけど、自分に気づいて大きく手を振って走ってくる三井にとりあえず平素を装ってお疲れ様と笑ってみせた。けど。その日からだった。三井が誰かと一緒にいる、話をする、笑う、そのすべてに苛立ちを覚えるようになったのは。

5年前も同じだった。嫉妬と不安、焦燥、執着がごっちゃ混ぜになった真っ黒で粘着質な感情が心臓を覆っていくような不気味な感覚。辛うじて理性で抑えたけど大学の友人やバスケチームの人達と一緒にいる三井を見るたびに理性が悲鳴をあげた。このままじゃ自分が壊れるか三井を壊してしまうか、どうにかなっちまう気がして、だから宮城は迷っていたアメリカ留学を急いだ。
アメリカに行くと伝えたら三井はよく決心したと自分のことのように喜んでくれた。

「だからさ、みつぃさ...」
「別れねーぞ」

別れの言葉を紡ぐ前にきっぱりと断られた。宮城を見つめる三井の瞳は真っすぐで一点の迷いもなかった。この人は人の気も知らねーでよくも、と呆れる一方で心臓がバクバク跳ねた。

なんでアンタはいつもそうやって―――

「でもすごい遠距離になるっすよ?」
「なに、ビビってんの?」

三井はニッと笑った。

「あんま考えすぎるな、宮城。俺が毎日電話すっからよ。お前はバスケに集中しろ」
「三井サン...」

なっさけない声!からかいながら三井は手を伸ばし宮城の頬を軽くつねった。

「浮気したらブッ殺すぞ」
「しねーよ」

できるわけないだろ、と心の中でつぶやく。

―――俺の欲しい言葉をくれるんすか?

アメリカにいる間、落ち着いてたからもう大丈夫だと思ったのに。
ちっとも変わってなかった。
昨日飲み会に行った三井を迎えに行った宮城は酔い潰れて知らないやつの肩にもたれ掛かってる彼を見た瞬間、ピンと張っていた理性の糸がぷっつんと切れる音を聞いた。頭の中が真っ暗になって気がついたら組み敷かれて真っ白な顔で気を失ってる三井がいた。サーッと血の気が引いて息が止まる。宮城は即刻に繋がりを解き慌てて三井の胸に耳を当てた。小さい鼓動を感じ取ってやっと息が出来るようになった。安堵するとともに涙が溢れた。後始末をしながら宮城はずっと泣いて届くはずもないのに何度も謝った。もう選択の余地など残されていなかった。
 
..

宮城はゆっくり深呼吸をして口を開いた。

「俺はさ、三井サンさえ傍にいてくれりゃ幸せだし生きていけるけど、アンタはそれだけじゃ幸せになれねーだろ。」

隠していた想いを言葉に乗せるのは簡単ではなかった。心臓に走る痛みに耐えながら宮城は淡々と話を続けた。気のせいか三井の顔が少しぼやけて見えた。

「アンタを誰の目にも触れない所に閉じ込めたいし、その笑顔もその優しさも全部俺だけに向けてほしいって、
ね、三井サン。俺アンタが他の奴らといるところ見るたびにこんなこと考えてんの。引くだろ?気持ち悪いよな」

目の前の風景が崩れ落ちてまたぼやける。向こうで息を呑む気配がした。

「だから俺から逃げてよ」
「宮城」

席から立ち上がり宮城に近づいてきた三井は床に膝をついて彼を見上げた。俯いてる恋人をしばらく見つめてから手を伸ばし親指でそっと涙を拭い触れるだけの軽いキスをした。宮城の涙ぐんだ瞳が少し見開いた。

「こんなことをするのも」

三井は宮城の手を引いて手のひらを自分のお腹に当てる。

「この中を知ってるのもこの世でお前だけなんだぜ?それでも足りねーか?」

視線を少し下に逸らしながら唇を尖らせる三井の頬は桃色に染まっていた。つられて宮城の耳もカッと熱くなる。手の甲で目を擦ってその時ようやく三井が膝を床についてることに気付いた宮城は慌てて三井の両腕を掴んで立たせた。

「膝そんなふうに使わないでよ」
「わりぃ」
「...足りなくないっすよ。むしろ充分すぎるぐらい。だから―」
「そんなに不安か?」

宮城は素直にこくりと頷いた。今更誤魔化したところでなんの意味もない。三井さんは何も悪くない、全部俺のせいとつけ加えるとため息とともに頭をわしゃわしゃされた。

「まあ、聞け」

三井は一回咳払いをした。

「今のチームの契約さ、一応今年までなんよ。」
「?」
「凄腕のシューティングガード要らない?ポイントガード以外はなんでもできるぜ。」
「え、いや、でも今のチームでうまくやっているんじゃ…」
「な、宮城」

両手で宮城の顔を包んではコンと額同士を軽くぶつけた。

「優先順位ってもんがあんだろ。今俺が一番優先してるのはお前とバスケなんだよ。
高校ん時みてーに同じチームだったらお前も少しは安心できんだろ」

なんでいつもそうやって―――

「それによ。俺もお前とまた同じチームで一緒にバスケやりてんだ。」
まあ、お前のチームから誘いが来ればの話だがな。と三井はそこだけちょっと自信なさげに口ごもる。

「だからそれまでは我慢しろ」
「…うん」

―――俺の欲しい言葉をくれるんすか?

座ったまま三井の腰をぐいと引っ張ってぎゅっと抱きしめるとまた優しい手つきで頭を撫でられた。鼻孔をくすぐる恋人の匂いを胸いっぱい吸い込んで満足げにため息を零す。宮城は顔を埋めたまま聞いた。

「ね、俺重くないっすか」
「現役選手ナメんな。お前ぐらい余裕でおんぶして歩けるわ。」

くせっ毛をいじっていた長い指が宮城の耳たぶを引っ張る。

「何それ。てか俺ウェイト結構増えてるっすよ」
「知ってる。昨日たっぷり体験したからな。」
「......サーセンでした」

顔を上げて上目遣いで見上げる。この顔に三井が弱いってのは知っている。三井はフッと笑ってこれで許してやろ〜と両頬をつねった。

「一人で溜めてねーでさ、俺にもおすそ分けしろぃ」
「......うん、努力する」

三井はコクリと頷く宮城を愛おしそうに抱きしめた。

「三井サン」
「ん?」
「ごめん。今日誕生日なのに変なこと言って」
「そーじゃなく他に言うことあるだろ」
「誕生日おめでとう。生まれてきてくれて本当にありがとう」

宮城は椅子から立ち上がって三井の唇をそっと舐めて自分の唇を重ねた。絡み合う吐息からメープルシロップの甘い香りがし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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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은 유난히 추웠다. 오전엔 맑았던 하늘은 어느샌가 몰려든 구름들로 잿빛 물감을 제멋대로 짓이겨 칠한 듯 얼룩덜룩 무겁고 축축해보였다. 
한 손으로 턱을 괴고 창문 너머의 우중충한 하늘을 올려다보던 태섭은 슬쩍 맞은편에 앉아 있는 남자에게 시선을 흘렸다.
김이 올라오는 머그컵을 만지작 거리며 멍하게 창 밖을 바라보던 남자-한 살 연상의 연인은 억양 없는 목소리로 중얼 거렸다. 


[눈...내리겠네]
[아ㅡ 눈 싫은데]

창문을 향해있던 고개를 돌려 태섭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그는 살짝 웃었다. 맞다 너 눈 싫어했지.네네 누구 덕분에요. 하하 야 난 그 때 눈 내리는거 보지도 못했어. ...흥.
어깨를 들썩이며 웃는 연인을 노려보면서도 참 단정하게 잘생겼다며 새삼 감탄하는 자신의 팔불출스러움을 속으로 욕하면서도, 저 웃음 속에 숨어있는 위화감 또한 놓치지 않았다. 
웃을 때의 눈썹의 모양, 눈매의 움직임, 입꼬리 모양, 뺨의 떨림, 웃음 소리...평소와 얼핏 비슷했지만 무엇 하나 같지 않았다. 눈 앞의 이 남자는 왜 내가 모르는 얼굴로 웃고 있는거지?
저도 모르게 눈썹 꼬리에 힘이 들어갔다. 머리가 지끈 거린다.
며칠 전 수개월만에 공항에서 재회했을 때는 태섭이 기억하고 있는 그의 모습 그대로 였다. 흔들리던 손도 살짝 물기를 머금은 눈동자도 어깨를 감싸안는 두 팔의 온기도.  
뒤엉키는 두개의 호흡속에 바르르 떨리는 눈썹도 모두 사랑하는 연인의 그것이었는데.     
언젠가부터 막연하게 느낀 위화감이 그 존재감을 뚜렷하게 드러낸 건 어제였다.
 
.
.
 

[여기 옆에 누워봐 태섭아.]

침대 위에 옆으로 비스듬히 누워 옆자리를 손바닥으로 팡팡 때리는 대만을 보며 태섭은 손에 들고 있던 드라이기를 내려놓고 곁으로 다가왔다. 

[뭔데. 지금 유혹하는거에요?]
[아니거든. 머리 다 말렸으면 이리와]
 
어깨를 으쓱하며 시키는 대로 얌전히 대만의 팔을 베고 옆에 눕자 뒤에서 나머지 한 쪽 팔이 다가와 그를 꼭 끌어안았다. 천천히 밀착해오는 낯익은 체온을 익숙하게 받아들이며 대만의 팔에 제 팔을 감았다. 샴푸 향과 바디 로션 향에 서로의 살내음이 섞여 가슴 속을 따뜻하게 채워간다. 목덜미 뒷쪽에 닿는 숨결이 간지러워 목을 살짝 움츠렸다. 대만은 그 목덜미를 살짝 깨물고는 올라가 방금 드라이를 해서 보송한 곱슬 머리에 얼굴을 묻었다. 세팅하지 않은 태섭의 머리카락은 생각보다 가늘고 부드럽다. 간지러웠는지 머리 위에서 작은 웃음 소리가 흘러나왔다. 


[태섭아. 송태섭]
[네.왜요]
[태섭아.... 태섭아]

몇 번이고 계속 품안의 연인의 이름을 불러댄다. 정수리 위에서 움직이는 턱과 맞닿은 피부를 통해 전해지는 몇 번이고 반복되는 자신의 이름의 울림이 낯간지러워진 태섭은 겹친 손에 꾹 힘을 주었다. 
 

[왜 이러실까. 뭐 할말 있어요?]
[...그냥]

그냥 지금이 너무 좋아서..들릴듯 말듯한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리곤 다시 한 번 태섭의 이름을 불렀다. 이름이 불러질 때마다 가슴 한구석이 간지럽다. 밀착된 체온의 따뜻함과 나른한 분위기에 슬며시 다가오는 수마를 어금니를 질근 깨물어 쫓아냈다. 좀 더 지금에 젖어 있고 싶었다. 등 뒤의 연인도 같은 생각이었나보다.
 
[계속 이대로였으면 좋겠다..]
[가능한한 빨리 다시 들어올테니까 조금만 기다려줘요]
 
태섭은 이틀 후면 다시 미국으로 돌아가야했다. 이번에는 그래도 보름 정도 좀 긴 휴가였는데도 시간은 정말 쏜살같이 지나갔다. 가족과 보낸 하루를 제외하고는 쭉 정대만과 함께 보냈음에도 불구하고 턱없이 부족했다. 상심한 연인을 조금이라도 달래려고 자신을 껴안고 있는 손을 쓰다듬었다. 어라? 원래 체온이 높은 사람인데 이상하리만치 손 끝이 차갑다.  
 
[형 손이 왜 이렇게 차가워요?]
[......]
 
대만은 아무 답도 없었다. 얼마간의 침묵을 깬 것은 등 뒤에서 짧게 숨을 들이키는 소리와 함께 흐트러진 숨소리였다. 훌쩍이며 몸을 떠는 것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순식간에 피어난 불안과 초조함이 좀 전까지 달달했던 기분을 밀어내고 심장을 뒤흔들었다. 
 
[잠깐, 지금 울어요?]
 
몸을 틀어 뒤돌아보려고 했지만 대만이 팔에 힘을 꽉 주어 움직이지 못하게 했다.
형 이 팔 풀어봐요. 왜 우는데. ...이대로 있...어... 흐흑, 나 보지마. 흐느낌 섞인 목소리가 불안한 심장을 세차게 때린다.
마주보고 달래주고 싶은데 당사자가 허락해주지 않으니 그가 왜 우는 지는 커녕 얼굴 조차 볼 수 없으니 답답할 노릇이다. 
또 당분간 곁을 떠나있게 될 것이 슬퍼서인가 아니면ㅡ. 며칠동안 대만과 함께 지내면서 느꼈던 작은 낯설음이 떠올랐다. 대소롭지 않게 넘기려면 넘길 수도 있는 별것 아닌 행동들. 멍하게 창밖을 바라본다거나 같이 걷다가 발을 헛디뎌 넘어질뻔 한 것을 잡아 준 것도 여러번이었다. 아 미안 생각 좀 하느라. 무슨 생각이 그렇게 많아요? 하하 그러게 말이다. 멋쩍게 웃으며 얼버무리던 얼굴에 서려있던 옅은 긴장감이라든가.
좀 의아했지만 간만에 재회한 연인과의 시간에 괜한 잡음을 섞고 싶지 않아 그냥 넘겨버렸었던 몇몇 장면들이 뇌리를 스쳤지만 그렇다 한들 지금 대만이 울고 있는 이유와 그것들의 상관관계를 태섭은 알 길이 없었다. 
등 뒤에서 계속 되는 흐느끼는 소리에 이 쪽까지 콧날이 시큰해졌다. 등 뒤에서 어깨를 들썩이는 감촉이 전해질 때마다 입 속이 바싹바싹 말라들어갔다. 심장이 욱씬거려 아랫 입술을 꼭 깨물며 손을 뻗어 대만의 짧게 친 머리를 토닥였다.
 
[형, 울지 마요. 울지마]

나직하게 연인을 달랬다. 좀처럼 울음이 그칠 기색이 보이지 않는다. 안되겠다싶어 억지로 몸을 틀어 마주보았다. 눈물에 젖어 엉망이 된 얼굴을 보이기 싫은지 손으로 얼굴을 가리려는 걸 저지하곤 안볼게요. 속삭이며 대만의 머리를 폭 끌어안았다.

[그만 울어요, 나까지 눈물 날라 그러네]
[....미안]
 
천천히 대만의 등과 머리를 쓰다듬었다. 들썩이던 어깨가 잠잠해졌을 때는 커튼 구석이 희끄므레한 빛으로 물들어있었다. 품 속 남자의 규칙적인 숨소리를 확인하고 나서야 태섭은 밀려드는 졸음에 몸을 맡겼다.
 

커튼 사이로 비쳐든 햇살에 잠에서 깨어났을 땐 침대 위에 태섭 혼자 였다. 아직 잠에서 덜 깬 머리를 긁적이며 침실 밖으로 나갔다. 베란다 창가에 서있는 대만이 보였다. 이쪽의 인기척을 못느낄 정도로 또 뭔가 생각에 잠겨있는 듯 했다. 일부러 발소리를 낮춰 조용히 곁으로 다가갔다. 창에 비친 그의 단정한 옆모습이 어딘가 좀 창백해보였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요? 사람이 옆에 온 거도 모르고. 요며칠 계속 그러네.]
[아, 미안. 일어났냐.]
 
물음의 답을 인사말로 흘려버리는 연인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태섭은 말을 이었다 .
 
[눈 부었어요]
[아ㅡ어쩐지 눈꺼풀이 무겁더라. ]
[...괜찮아요?]
[어? ...어]
 
대만은 난처한 듯 웃더니 나 먼저 씻을게. 점심은 나가서 먹자. 라며 슬며시 자리를 피했다. 참 속을 못숨기는 사람이라고, 태섭은 생각했다. 대체 저 속에 뭐가 들어있는건지. 어제의 일을 떠올리자 가슴 한켠이 시큰해졌다. 태섭은 양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손가락으로 눈두덩이를 꾸욱 눌러 문질렀다. 숨기고 있는 것이 무엇이든 그걸 끄집어내서 어떻게 풀어가야 할지 잠부족으로 희끄무레한 머릿속을 쥐어짜며 고민하기 시작했다.
 
 
.
.
 

[태섭아]
[.....아 네?]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에 퍼뜩 지금으로 의식을 돌렸다. 담담한 표정으로 이 쪽을 응시하는 시선을 태연한 척 맞받았다.
아주 잠시간 마주보다가 대만은 옆 소파에 걸쳐둔 코트를 집어들며 말을 이었다.
 
[좀 걸을까?]
 
그는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코트에 팔을 꿰어넣었다. 계산서를 들고 카운터로 향하는 대만의 뒷모습을 쫒다가 이내 태섭도 자켓과 머플러를 들고 뒤따랐다. 카페를 나서자 몸을 감싸고 있던 실내의 온기는 눅눅한 겨울 바람에 한순간에 날아가버렸다. 날숨에 하얀 입김이 흩어졌다. 
태섭은 반걸음 정도 떨어져 앞서가는 묵묵한 등을 보며 걸었다.  사람이 북적대는 카페 거리를 지나 공원 깊숙히 인적이 드문 다다르자 대만은 걸음을 멈추었다. 등지고 선채로 한 번 숨을 내쉬더니 입을 열었다.
 
[우리 그만하자.]
[...무슨 소리에요 갑자기.]
 
[헤어지자]
 
아 왜 항상 좋지 않는 예감은 맞아떨어지는 걸까. 징크스란 놈의 멱살을 잡아 바닥에 패대기 치고 싶은 기분이었다. 
수일간에 걸쳐 쌓인 위화감과 어색한 태도 생소한 표정 뒤에 가려져있는 판도라의 상자의 정체는 예상한대로 였다. 
하지만 정대만이 대체 무슨 이유로, 어떻게 그런 결론에 도달하게 되었는지 도무지 알수가 없었다. 
그럴수 밖에 없잖아. 분명 둘의 애정 전선에 이렇다 할만한 문제는 없었으니까.
결코 가깝지 않은 거리의 롱디였지만 매일 짧게라도 통화를 했고 어떻게 쥐어짜도 시간이 되지 않는 날은 이메일을 썼다. 그 날의 날씨부터 있었던 일, 힘들었던 일, 화났던 일, 즐거웠던 일, 뭘 먹었는지 어딜 갔었는지, 하고 싶은 말, 아픈데는 없어요? 무릎은 괜찮고? 밥 잘 챙겨먹어요. 응 나도 보고 싶어요. 잘자요. 내 꿈에도 좀 나오고 그래요. 보고싶다.
손에 닿는 온기는 없을지언정 마치 곁에 있는 것처럼 그 날의 감정부터 시시콜콜한 일상까지 주고 받았다. 타지에서 힘든 일이 있어도 전화로 투정을 받아주는 연인의 목소리가 탄탄한 버팀목이 되어주었고, 대만에게도 자신이 그런 존재일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랬는데. 전부 혼자만의 착각이었다고?
우뚝 선 등은 아무런 대꾸도 없었다. 울컥 치밀어올라 태섭은 목소리를 높였다.
 
[형!]
[나 결혼할거야.]
[하? 그게 무슨 말이에요?!]
[아버지 사업 물려받으려고.]
 
그런 얘기 지금껏 한 번도 들은 적 없었던 태섭은 좀 벙찐 기분이 되었다. 대만의 집안이 꽤 큰 기업을 경영하고 있다는 얘기는 들은 적 있었지만 특별히 집안이나 사업에 관한 언급은 전혀 없었다. 그런데 갑자기 사업을 물려받겠다고? 그래서 결혼을 할거라고? 농구는? 그 말을 믿으라고? 대체 무슨 생각이야, 정대만? 태섭은 머릿속에 쏟아져나오는 말들을 꾹 누르고 훅 숨을 내뱉았다. 목젖에 쎄한 통증이 어렸다 .
 
[지금 그걸 나보고 믿으라고?]
[믿고 안믿고는 니 자유야.]

정대만 얼굴보고 얘기해! 대만의 팔을 잡아 거칠게 돌려세웠다. 어금니를 꾸욱 깨물며 마주한 대만의 시선에 . 순간, 숨이 턱 막혔다. 소름돋을만큼 고요한 눈빛은 하지만 분명하게 의사 표현을 하고 있었다. 일절의 감정을 배제한 그 눈동자는 매우 단호했다. 니가 무슨 말을 하든 소용없어, 선택지는 하나뿐이다.
대만은 천천히 눈을 한 번 깜빡이고는 억양 없는 단조로운 어투로 재차 내뱉았다.
 
[분명한 건 더 이상 내 옆자리는 니 자리가 아니란거야]
 
경직된 목구멍을 긁으며 기어올라온 목소리는 [왜 그러는데........] 라고 한마디를 겨우 짜내고는 흩어졌다. 뭔가 말해야해. 뭐냐고 그런거 납득 못한다고 6년간의 함께 했던 그 시간들은 대체 너한테 뭐였냐고 대들어 따지든 가지 말라고 붙들든 뭐든 해야한다고 속으로 자신을 채찍질 했지만 뱀 앞에 놓인 개구리 마냥 옴짝달싹 할 수 없었다. 가슴이 아플 정도로 빠르게 뛰는 심장 박동이 고막을 쿵쿵 울렸다. 있는 힘을 다해 팔을 들어 붙들려고 했지만 닿지 않았다. 늘 닿을 수 있는 가까운 거리에 있다고 생각했는데 거기에는 서커먼 공허만이 존재했다. 
 
[그러지 마요 형......]
 
달싹이는 입술 사이로 가느다랗게 갈라진 목소리가 세어 나왔다. 간절한 그 목소리에 대만의 표정이 아주 잠깐 일그러지는 듯 했으나 이내 다시 차가운 표정으로 돌아왔다. 대만은 그대로 발걸음을 돌렸다.  
 
 [...건강해라]
 
마지막 한마디를 남기고 한발자국 한발자국 멀어지는 대만의 뒷모습을 태섭은 멍하게 바라보았다. 쭉 계속 될거라 생각했던 6년의 시간이 돌연 납득할 수 없는 끝을 맞이한 것이다. 갑작스레 찾아온 상실감과 당혹감 그리고 의문이 뒤엉켜 가슴을 짓눌렀다. 제대로 숨이 쉬어지지 않아 여러 차례 기침을 해댔더니 목구멍이 따갑고 쓰렸다. 어깨를 크게 들썩이며 허덕대고 있자니 문득 뺨에 차가운 것이 닿았다. 고개를 들자 잿빛 하늘에서 하얀 결정들이 쏟아지고 있었다. 어지럽게 난무하는 하얀 장막이 저 멀리 작아진 뒷모습을 완전히 감추어버렸다. 눈 앞의 허공을 하얗게 수놓는 눈에 시선을 던지며 엉망진창의 머릿속에서 떠오른 한마디를 태섭은 내뱉듯이 읊조렸다.
 
[진짜.. 쓰레기 같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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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벅저벅.
대만은 도망치듯 최대한 빠른 걸음으로 태섭에게서 멀어져갔다. 머릿속은 백짓장마냥 새하얗게 질려있었고 그저 어서 그 곳에서 사라지고 싶다는 마음뿐이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전신이 심장이 된것 마냥 쿵쾅쿵쾅 날뛰는 심박동에 후들거리는 다리에 힘을 꽉 주어 최대한 아무렇지도 않은 척 앞으로 나아갔다. 
헤어지자 헤어지자 헤어지자 헤어지자 울면서 수백번 연습했던 이별의 대사를 제대로 연기해냈나?  한 자 한 자 내뱉을 때마다 코트 주머니에 찔러넣은 오른손에 힘을 꾸욱 주었다. 그 자리에서 울어버리면 안되니까. 손가락 마디마디가 하얗게 핏기가 가실만큼 강하게 주먹쥔 손이 눈물을 흘리는 대신 축축하게 젖어있었다.
태섭의 시야에서 완벽하게 사라졌을 때 쯤 대만은 저도 모르게 참고 있던 숨을 짧게 내뱉음과 동시에 급격하게 올라오는 구토감을 느끼고 근처에 있던 공원 화장실로 급하게 뛰어들어갔다.
흐린 날씨 탓에 화장실 실내는 어두컴컴했지만 개의치 않고 화장실 칸 문을 열어젖히고 변기 앞에 주저앉았다.
안의 내장까지 다 토해낼 기세로 구역질을 계속 했다. 아침부터 아무것도 먹지 않은 탓에 올라오는 건 위액 뿐이었는데도 그냥 역겨워서 견딜 수가 없었다. 그렇게 할 수 밖에 없었던 상황이, 정말 그것이 최선의 선택인가 수천번 수만번 생각해봤지만 결국은 매번 같은 결론에 도달할 수 밖에 없는 자신의 나약함이 혐오스러웠다. 계속 위액을 토해낸 탓에 입안이 시큼하다못해 쓰다. 
거칠게 숨을 몰아쉬며 변기에서 떨어져 벽에 기대었다. 머리가 깨질 듯이 아프다. 주머니에 찔러넣었던 오른손을 꺼냈다. 짧은 손톱이 손바닥에 박혀 손이 빨갛게 젖어있었다. 그제서야 통증이 밀려오며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일생 일대의 연기를 위해 준비했던 가면이 날카로운 파열음과 함께 깨지며 바닥에 흩어졌다.
단 하나뿐인 소중한 사람에게 커다란 상처를 주었다ㅡ라는 사실이 심장을 마구 난폭하게 후벼팠다. 만신창이가 된 심장에서 철철 흘러넘치는 선혈이 눈물이 되어 끊임없이 쏟아져내렸다. 피투성이의 오른손도 눈물에 가려 벌거스름한 색채만 남기고 흐릿하게 녹아버린다. 눈에 비치는 모든 것이 녹아서 흐믈하게 보이는 가운데, 마지막으로 봤던 태섭의 얼굴만이 선명하게 보인다. 바짝 굳은체 크게 벌어진 눈동자로  아무 말도 못하고 서있던 그의 얼굴이 지긋이 이 쪽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런 갖다 붙인듯한 이유로는 납득하지 못하겠지. 태섭이라면 아마 거짓말이라는 건 바로 알아챘을거다. 하지만 결단코 사실을 말할 수는 없었기에 마음을 단단히 걸어잠그고 가면을 뒤집어쓸 수 밖에 없었다.
그런 표정 짓게 하고 싶지 않았는데...대만은 몸을 웅크린 채 몇 번이고 사죄의 말을 반복했다. 
 
미안해. 정말 미안하다, 태섭아.
있는 힘껏 날 원망하고 그리고 깨끗하게 잊어.
그리고 건강하고 행복해라.
안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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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은 어떻게 숙소까지 도달했는지 모른다. 신발도 벗는 둥 마는 둥 침대에 쓰러져 그대로 죽은 듯 잠들어 태섭이 눈을 뜬 건 이튿날 정오쯤이었다. 바짝 마른 목구멍이 갈증으로 쓰라리고 머리는 깨질듯이 아팠다. 태섭은 머리를 움켜쥐고 겨우 침대에서 내려와 비틀대며 거실로 나갔다. 냉장고 속 차가운 생수를 벌컥벌컥 들이키자 갈증은 어느정도 해소되었지만 여전히 불쾌한 느낌은 가시지 않는다. 벽에 기대어 길게 심호흡을 여러번 했다. 두통이 좀 가라앉으면서 차츰 냉정함이 돌아왔다. 눈을 감고 어제의 일을 반추했다.
영문을 알 수 없는 갑작스러운 이별 선고. 결혼이니 사업을 물려받느니 전부 적당히 갖다붙인 핑계라는 거 정도는 알고 있었다.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어느정도 예상을 하고 있었다해도 직접 본인의 입으로 그 말을  들었을 때의 충격은 역시 가볍지 않았고 게다가 그 때 그의 눈빛은...태섭으로 하여금 아무 것도 못하게 만들었다. 그 순간 무섭다...고 느꼈다. 그 어떤 말도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니 당장 떠나라고 견고한 벽이 으르렁대고 있었다. 웬만한 일은 허허 웃으며 원만하게 넘기고 받아들이던 남자를 대체 무엇이 그렇게까지 몰아세우고 있는 것인가. 그 무언가가 두려웠다.
하지만 그 이유가 무엇이든 간에 이대로 납득할 태섭이 아니었다. 코치에게 전화를 걸어 일주일 더 있다 갈거라고 일방적으로 통보하고 뭐라뭐라 얘기하는 수화기를 던지듯 내려놨다. 그리고 욕실로 향했다. 일단 정대만을 만나자.
 
.

[대만이라면 며칠 전에 관뒀다뿅]
[하? 왜 그걸 이제 얘기해요?!]
 
대만이 속해있는 농구팀으로 찾아가서 팀메이트인 이명헌에게 대만에 대해 물어봤다가 돌아온 대답에 발끈하며 팔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가자 명헌은 무표정한 얼굴로 태섭의 손을 뿌리쳤다. 태섭과 명헌은 서로의 연인에 대한 현황을 교환하는, 말하자면 거래 관계였다. 
 
[내 친구는 니가 아니라 대만이다뿅]
 
그는 속을 알 수 없는 눈빛으로 태섭을 내려다보며 고개를 홱 돌렸다. 
 
[대만이가 절대 너한테 얘기하지 말래서 그랬을 뿐이야]
[......]
[그리고... 지금은 나도 걔 어디있는지 알고 싶다]
 
한숨을 푹 쉬며 코트로 돌아가는 명헌을 보며 태섭은 아랫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초조함이 마음을 휘저었다. 
공통 지인, 농구쪽의 지인, 지인의 지인 등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인맥을 동원해서 여기저기 물어보고 수소문도 해봤지만 모른다. 나도 놀랐다. 라는 대답뿐이었다. 
최후의 수단으로 찾아간 흥신소 역시 가는 곳 마다 고개를 가로로 저을 뿐이었다. 의뢰를 받을 수 없단다. 정대만의 집안이 어느 정도 재력과 권력이 있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정도였나 싶을 정도로 단서 한조각도 찾을 수 없었다. 
헤어지자  한마디만 남긴채 완벽하게 자취를 감춰버린 그 남자의 이름을 그저 속으로 되뇌이는 것 밖에 지금의 태섭이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정대만이 사라졌다. 
 
.
 

터덜터덜 묵고 있는 호텔로 돌아와 미국으로 돌아갈 준비를 시작했다. 아무런 생각도 하기 싫었다. 그냥 여기를 벗어나 모두 다 잊고 농구에 전념하고 싶었다. 그저 며칠 사이에 박살난 멘탈 회복에 온 정신을 집중하고 싶었다. 살기 위해서.
짐싸기에 집중하다가 침대 옆 테이블에 놓여있는 반지를 발견하였다. 사귄지 1000일이 되던 날 태섭이 대만에게 선물했던 커플링이었다. 옆에 하얀 메모지가 함께 놓여있었다.
 
돌려줄게
 
짧은 메세지가 가슴을 쿵 밟고 지나갔다.  순간 울컥 치밀어 태섭은 반지를 집어던지려고 했지만 차마 던질수 없었다. 그저 손안의 차가운 금속의 감촉을 느끼며 우두커니 서있었다. 
정말 이대로 끝인가ㅡ 애써 외면했던 두려움이 밀물처럼 밀려들었다. 그제서야 눈물이 주룩 흘러내렸다. 상실 당혹 분노 슬픔 허탈 초조 후회 그리움 온갓 감정이 뒤범벅이 되어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눈물은 흐느낌이 되고 이윽고,
 
[왜 나 버려요..]
 
답이 돌아올리 없는 물음을 허공에 던지며 태섭은 주저 앉아 오열했다.
창밖에는 며칠째 계속 눈이 내리고 있었다.
 
 
 
 
 
 

Posted by Bernardo
,

FF15

2017. 2. 13. 0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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