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각사각ㅡ]
새하얀 종이 위를 달리는 은빛 펜촉의 리듬감 있는 발자국 소리가 가벼운 침묵 위를 아슬아슬하게 내달린다. 거기에 발맞추어 검은색 잉크선이 때론 곡선을, 때론 직선을 그리며 비로소 자신의 존재의 의미를 부여받는다. 커다란 손이 쥐고 있는 매끈한 검정색 바디의 만년필이 그 움직임을 멈추었을 때 나도 모르게 새어나오려던 아쉬움 찬 한숨을 가까스로 집어삼켰다.
“おい、ジャン、ちゃんと見てたのか?”
“うん?...あ、もちろん。それにしてもあんた、ホント綺麗な字書くんだな。
“ふーん、そうか?まあ、普通だろう。”
―あ、はいはい。俺は普通以下ですよ―
언젠가 백지수표에 만년필로 싸인을 하는 루키노의 모습에 반해서..
―俺もそうなりたいなーって思ったんだけどな
“ほら。”
루키노는 한쪽 뺨을 움직여 가볍게 웃으며 새 종이와 쥐고 있던 만년필을 내게 건넸다. 받아 쥔 만년필은 아직 루키노의 체온이 남아있어서인지 희미한 온기가 손가락을 통해 느껴졌다. 오른손에 어설프게 만년필을 쥐고 눈앞에 놓인 하얀 종이를 멍하게 내려다보았다.
“おい、どうした?”
“あ、いや、何書こうかなーって。”
“別に何でもいいだろう。そうだ、まずは自分の名前から書いてみたらどうだ。”
「そうだな」하고 고개를 끄덕이며 펜촉의 끝을 종이위에 내딛었다. 딱히 글을 못읽고 못쓰는건 아니다. 어느쪽이냐면 이 만년필이다. 아무리 해도 만년필에는 손이 익지 않는 것이었다. 지금처럼…
“ああっ!”
위태위태하게 선을 이어가던 검은 잉크가 아니나다를까 검은 블랙홀을 만들어내었다. 간신히 적은 삐뚤빼뚤한 글자를 집어삼키듯 퍼져가는 검은 잉크의 웅덩이를 보며 짧은 탄식을 토해냈다. 머리위에서 작게 공기를 내뿜는 소리가 들린다.
―ヤロウ!笑いやがって...くそ、まだまだ!
만년필을 고쳐쥐고 다시 종이위로 펜촉을 움직였다. 하지만 곧 몇자 못가서 다시 검은 웅덩이 속으로. 또다시 세번, 네 번, 다섯번… 하얀 종이는 어느새 온통 검은 반점으로 얼룩져있었다. 덩달아 내손가락도 새까맣게 물들었다.
“おいおい、酷いもんだな、これは。”
옆에서 내려다보고 있던 루키노가 웃음기 섞인 말을 내뱉으며 어깨를 으쓱했다. 그런 그를 잠깐 흘겨보곤 책상에 놓여져있는 얼룩덜룩해진 종이를 휙 밀어버리고 풀썩 엎드려 버렸다. 매끄러운 책상에서 풍기는 고급 원목의 향긋한 향기가 코끝을 간지럽힌다. 일부러 성대하게 한숨을 내쉬고는 고개만 옆으로 돌려 그를 올려다보았다.
“ハァ―――――やっぱ、ダメなのかな~”
“バーカ。何言ってるんだ。”
커다란 손이 다가와 내 머리카락을 헝클어뜨리며 슥슥 쓰다듬는다. 넓은 손바닥에서 느껴지는 온기의 포근함이 기분 좋았지만 동시에 어린애 취급을 받는 듯한 느낌이 마음에 들지 않아,
“やめろよ。髪型メチャクチャになるだろう。”
라고 입으로만 불평을 하며 삐죽거렸다. 직접 손을 뿌리치지 않는 것은, 실은 좀더 쓰다듬어주길, 좀더 만져주길 바라는 내가 있기 때문이란 것은 충분히 인지 하고 있다. 하지만 그런 '나'를 허락해버리면 루키노와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나아가 CR:5를 이끌어나갈 멋진 '남자'가 되기 위한 원대한(?) 계획이 깨져버릴 것 같았다. 이미 알렉산드로 오야지로부터 보스의 지위를 물려받은 상태이긴 하지만 아직 많이 부족하다는 건 스스로도 잘 알고 있었다.
―だから、せめて甘えるのは夜だけってことで
속으로 결심을 곱씹고 있는 사이에 어느새 머리위에 얹혀져있던 손의 감촉이 사라져있었다. 허전함에 입맛을 다시며 고개를 살짝 들자 다시 은은한 시트러스 향과 함께 어두운 와인빛의 코트가 다가왔다.
“手出せよ、汚れてるだろう。”
“あ...”
뭐라고 대답하기도 전에 루키노는 검은 잉크가 곳곳에 묻어있는 손을 잡아끌어 자신의 손위에 올려놓고 다른 손에 들고 있던 물에 적신 하얀 손수건으로 손가락 하나하나 어루만지듯 천천히 닦아내어갔다. 보드라운 손수건 너머로 느껴지는 단단한 손가락이 피부에 닿는 곳 마다 조그마한 열기를 심어간다. 그렇게 하나둘 모인 열기가 하나의 흐름이 되어 가슴속으로 흘러들어와 심박수를 급격하게 늘여갔다.
“インクじゃなかったら舐めて綺麗にして差し上げたのに、な。”
“...変態。”
휙 반대편으로 고개를 돌려버렸다. 발갛게 상기되어있을게 분명한 얼굴을 보이기가 왠지 쑥쓰러웠다.
「ハハ、何照れてんだ?」라는 말과 함께 시원한 웃음소리가 뒷통수로 날아들어왔지만, 「うるせ」라고 대꾸하며 여전히 고개를 돌린채. 하지만 한쪽 손은 여전히 그에게 맡긴채.
“もっと。”
“うん?”
“もっとゆっくり進んでもいいんじゃないのか?”
고개를 돌려 루키노를 바라보았다. 가을 저녁 하늘의 붉은 노을빛을 연상 시키는 붉은 빛을 띈 눈동자가 가만히 내 눈을 응시한다. 그리고는 곧 근처의 여성을 100명 정도는 가볍게 쓰러지게 할 근사한 미소를 지어보이며, 내 손 대신 검은 얼룩으로 범벅이 된 손수건을 코트 포켓에 넣고는 내 손을 가볍게 쥐어 들어올렸다.
“やっと綺麗になったな。本当、手の掛かるお姫様だ。”
고개를 숙여 내 손등 위로 그 단정한 입술을 떨어뜨려 '쪽' 소리가 나게 키스를 했다. 짧은 순간이지만 손등에 닿는 촉촉한 입술의 감촉은 세상의 그 어떤 미약(媚薬)보다 더 달콤하고 아찔하게 온몸의 신경을 자극해온다. 예민해진 감각이 희미한 숨결에도 반응해서 심장의 박동을 부추겼다.
“ところで、ジャン。お前最近…”
그때,'똑똑' 하는 노크 소리가 방안에 울려퍼졌다.
「失礼します。カポ。シニョーレ・グレゴレッティはいらっしゃいますか?」
문 넘어로 들리는 목소리에 루키노는 짧게 혀를 차며 대답했다.
“いる、入れ。”
쥐고 있던 내 손을 가만히 내려두고 루키노는 성큼성큼 문으로 다가갔다. 문을 열고 들어온 루키노의 부하로 보이는 남자는 내게 허리를 굽혀 정중히 인사를 하고나서 루키노에게 나지막한 목소리로 뭔가 얘기하기 시작했다. 루키노는 얘기를 들으며 몇번 고개를 끄덕이더니 내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ジャン、ちょっと行ってくる。”
“ああ。俺も一緒に行った方がいいか?”
“いや、そんな大したことじゃない。すぐ帰ってくるからお前はそれ、練習でもしていろ。”
그는 턱으로 만년필과 종이를 가리키며 한쪽 눈을 찡긋했다.
“わ、わかったよ!早く行ってこい。”
시선을 홱 피하며 퉁명스럽게 내뱉었다. 그런 나를 보며 그는 가볍게 웃음을 짓더니 세련된 동작으로 허리를 숙이며,
“それではカポ、行って参ります。”
조금 과장된 한마디를 남기고 부하와 함께 밖으로 나갔다. 덜컹 문닫히는 소리와 함께 뚜벅뚜벅 구두소리가 점점 멀어져감에 따라, 조금씩 심장이 제 리듬을 되찾아가고 있었다.
―ふう~、まったく身が持たねーな。いろんな意味で。そういえば、ルキーノ、先何言おうとしたんだろう
어깨를 으쓱하며 의자에 등을 기대어 깊숙히 몸을 묻었다. 적절한 푹신함이 몸을 폭 감싸는 느낌에 무의식중에 편안한 한숨이 훅 세어나온다. 새삼스럽지만 집무실 안을 찬찬히 둘러보았다. 데이반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절경의 스폿에 자리 잡은 이곳은 CR:5의 새 아지트의 보스 집무실이다. 보스가 된지 몇개월인가 흘렀지만.. 아직도 이 의자가 내 자리라는 게 실감이 안난다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었다.
「もっとゆっくり進んでもいいんじゃないのか?」
“ゆっくり......か。”
루키노의 말을 속으로 되뇌이며 무심결에 옮긴 시선끝에 하얀 종이와 검은 만년필이 비쳤다.
“仕方ない、練習でもするっか。”
몸을 일으켜 마악 만년필을 집으려던 찰나, 난폭한 구두소리가 들리더니,
[쾅쾅쾅ㅡ!]
노크를 하는건지 발로 차는건지 모를 요란한 소리를 내며 문이 흔들렸다. 이런 짓을 할 녀석은 하나밖에 없다.
「おい、ジャン。いるんだろ?」
―ほら、やっぱり
“うるっせな!入れよ。”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콰당하고 거침없이 양쪽으로 문을 열어재끼며 이반이 집무실 안으로 들어온다.
시선으로 슥 방을 훑어 데스크에 앉아 있는 나를 발견하곤, 삐딱한 걸음으로 다가왔다. 데스크 넘어로 마주선 이반은 흥 하고 콧방귀를 뀌며 비아냥거리듯 말했다.
“ふん、いいご身分なこった。このやろ。”
“言ってろ、バーカ。何しにき……あ。”
―そういえば、こいつ...
▷만년필 습자 연습 지도를 부탁한다
▶그냥 혼자 한다
―いいや、やめとこ。あいつ他人に何か教えるの下手そうだし、それにからかわれるのがオチだ
“で?どうしたんだよ。”
“この前、頼んでたヤツ手に入りそうだぜ。”
“え?!マジ?!”
비스듬히 손등에 괴고 있던 얼굴을 대뜸 들어 이반을 쳐다보았다. 이반은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콧바람을 가볍게 내뿜었다.
“へえ~お前もたまには使えるんだな。”
“んだと、コラッ!!!!ハ~ン、さてはもう必要ないんだな?”
“いやだな~こんなんで拗ねちゃって!イヴァン様ったらぁ~”
“うるせ!!!”
뭐 씹은 표정으로 이쪽을 노려보는 이반을 얼굴을 보며 속으로 풋.
―やっぱりからかい甲斐があるんだよね、こいつ
“まあ、冗談は止して、ありがとう、イヴァン。いつ頃手に入りそう?”
“ふん。明後日取りに来な。”
“了~解!イヴァン、本当ありがとよ。”
“わかりゃいい。そんじゃ。”
이반은 등 돌려 문쪽으로 터벅터벅 걸어가며 한손을 들어보이곤 집무실을 나갔다.
콰당 문닫히는 소리와 함께 구두소리가 멀어지며 다시금 집무실안에 침묵이 찾아왔다. 집무실 한쪽 구석에 서있는 안티크풍의 괘종시계의 초침이 질서정연하게 자아내는 시각[時刻]의 숨소리만이 조용히 쌓여간다. 가볍게 숨을 내쉬며 만년필을 쥐어들었다.
“よーし!まずは名前から!”
일부러 소리 내어 말하며 펜촉 끝을 종이에 부딧혔다.
.
.
.
“思ったより時間が掛かってしまったな。”
코트의 포켓에서 플라티나제의 회중시계를 꺼내든 루키노는 낮게 중얼거리며 발걸음을 재촉했다. 아지트 건물 입구를 들어서자 저쪽에서 이반이 걸어오는 것이 보였다. 순간 루키노의 미간이 살짝 좁혀졌다. 원래부터 이반에 대해 그리 탐탁치 않게 생각했었지만, 요즘 들어서 부쩍 눈에 거슬리던 참이었다.
“ン?何だ、お前か。なにこんなとこで突っ立てやがんだ?”
“…いや、何でもない。”
“ふん。”
이반은 양어깨를 으쓱하며 루키노의 옆을 지나치려다가,
“あ、そうだ。”
발걸음을 멈추었다. 루키노는 고개를 옆으로 돌려 이반을 내려다보았다.
“一応言っとくけど、ヤツと俺、なーんにもないから。”
“…何のことだ?”
“はっ!惚けやがって!もうバレバレだっつんだよ。こそこそ尾行なんかさせやがって!”
“……”
이반의 말에 루키노는 아무런 반론도 대꾸도 하지 않았다.
“やつは事情があって俺の仕事をちっと手伝ってただけだ。ま、テメエが何考えているかは知ったこっちゃねーがな。そもそも俺はテメエらみてーなくそホモやろじゃねーし?”
“……”
“今度またあんなマネしてみやがれ。バラして海にぶっこんでカニの餌にしてやら!”
내뱉듯이 말하곤 양손을 바지 주머니에 푹 꽂은 이반은 다시 걸음을 옮겼다. 장대처럼 가만히 서있던 루키노는 몸을 돌려 막 입구를 나가려는 이반을 향해 천천히 입을 땠다.
“イヴァン。”
“あ?”
“すまなかった。”
“抜かせ、タコ。謝るくれーならはじめっからすんナ!”
빠른 걸음으로 아지트를 나가는 이반의 뒷 모습을 바라보던 루키노의 작은 실소를 흘렸다. 습기를 머금은 미적지근한 바람이 흩트리고 지나간 붉은빛 머리카락을 쓸어넘기며 아지트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俺もまだまだバカだな。”
자조띈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하지만 그 표정은 어딘가 모르게 개운해보였다.
.
.
.
[똑똑-]
매끈한 짙은 적갈색의 원목문이 경쾌한 노크소리를 내며 흔들렸다. 하지만 안에서는 아무런 반응도 없다. 의아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 하며 루키노는 재차 노크를 했다. 여전히 안에서는 무반응. 뇌리를 휙 스치고 지나가는 불길한 생각에 황급히 문을 열어재꼈다.
그리고 곧 눈앞에 비쳐든 모습을 보며,
“このヤロ......人には心配させといて。”
안도의 한숨과 함께 불만 담긴 목소리로 내뱉듯 중얼 거렸다. 그리곤 성큼성큼 큰걸음으로 데스크에 엎드려 자고 있는 쟝에게 다가갔다. 노크 소리도 문 열리는 소리도 못들었는지 규칙적으로 어깨를 달싹이며 새근새근 편안한 숨소리를 내고 있다. 바깥세상은 무겁고 미지근한 바람이 숨쉬는 것 마저 짜증스럽게 하는 무더운 날씨였지만, 에어컨의 은총을 받고 있는 이 집무실은 그야말로 별세상. 조용하고 나른한 오후, 수마[睡魔]의 유혹에 빠져 꿈의 바다를 허우적대기엔 더할나위 없이 좋은 조건이리라.
“まったく...よく寝てるな。そういや、昨日あんまり寝られなかったか。”
처음에는 깨울 요량이었지만, 곤히 자고 있는 쟝을 보니 역시 좀 망설여지는지 루키노는 어깨를 흔들어 깨우려고 뻗었던 손을 다시 거두어들였다.
“もうちょっと寝かせてやるよ。お姫様。”
루키노는 손등으로 쟝의 하얀 뺨을 조심스레 쓰다듬더니 코트를 벗어 어깨를 덮어주었다. 뭔가 즐거운 꿈을 꾸는지 살짝 미소를 띈 쟝의 잠든 얼굴을 보며 당장이라도 그 붉은 입술에 키스 하고 싶은 충동을 애써 누르며 발걸음을 옮기려는데,
[부시럭-]
뭔가 가벼운 것이 그의 발끝에 걸렸다. 뭔가 싶어 내려다보니 둥글게 구겨 뭉쳐진 종이뭉치였다. 구겨진 주름 사이로 거뭇거뭇한 것이 내비치는 것이 글자인듯 보인다. 그런 종이 뭉치들이 몇갠가 데스크 주변 바닥에 뒹굴고 있었다. 루키노는 별 생각 없이 발끝에 채인 종이 뭉치를 주워들어 펼쳤다. 「Luchino Gregoretti」아까 봤을때와는 달리 번진 자국 없이 꽤 깔끔해진 글씨체로 빼곡히 그의 이름이 적혀 있다. 다른 사람이 이렇게 열심히 자신의 이름을 적어놓은 걸 보고 있자니 좀 낯간지러운 느낌이 들어 시선을 돌리려는데, 종이 아랫부분에 이름이 아닌 다른 글이 적혀 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まだ、聞いていない」
「まだ、聞けない」
「俺は…」
거기에서 끊겨 있었다. 루키노는 조금 복잡한 표정으로 아직 깊은 잠에 빠져있는 쟝의 얼굴을 한번 쳐다보더니 바닥으로 고개를 돌렸다. 아직 몇갠가 바닥에 떨어져있는 종이 뭉치들을 하나씩 주워들어 주름을 펴들더니 구깃구깃한 종이들을 한손에 들고 데스크에서 조금 떨어져있는 카우치로 조용히 걸음을 옮겼다. 그는 깔려있는 새하얀 모피융단 위로 깊게 몸을 묻고 손에 들고 있던 종이를 한장씩 천천히 읽어내려가기 시작했다.
괘종시계의 초침 소리와 쟝의 자는 숨소리, 그리고 간간히 종이의 부시럭 거리는 소리만이 넓은 집무실을 채워간다.
.
.
.
어디선가 풍겨오는 시원한 시트러스향의 향기가 코끝을 가볍게 쓰다듬는다. 익숙한 향기에 깊숙이 숨을 들이마셨다.
―あったかい…
몸을 폭 감싸고 있는 포근함이 기분 좋아 좀더 잠을 청하려 했지만 이미 잠에서 깨어버린 뇌가 어서 눈을 뜨라고 재촉해대는 통에, 아쉬움에 입맛을 다시며 천천히 눈꺼풀을 들어올렸다.
―寝ちゃったのか…
아직 멍한 머릿속으로 추스리며 엎드려 있던 상체를 일으켰다. 계속 엎드려서 잠들어 있던 탓에 뻐근해진 목을 주무르며 주위를 휘 둘러보았다. 전면 유리창을 통해 비쳐드는 붉은 노을빛에 집무실 안도 발갛게 물들어있다. 창밖으로 노을진 하늘을 바라보며 길게 하품을 뱉어냈다.
―もう夕方か。ずいぶん寝たな……うん?
그제서야 어깨에 뭔가 걸쳐져있는걸 깨달았다. 코트다. 익숙한 향기가 은은하게 배여있었다.
―ルキーノのコート……え?
다시 주위를 둘러보는 시선이 카우치에 앉아 있는 거구의 남자를 포착했다. 비쳐든 노을빛이 남자의 붉은 머리칼을 더 선명한 붉은 색으로 물들였다. 붉은 빛이 만들어낸 음영에 시원시원하게 조각된 또렷한 이목구비가 더욱 그 남자다움을 돋보이게한다. 그도 이쪽의 시선을 느꼈는지 손에 들고 있던 하얀 종이 뭉치를 내려놓으며 싱긋 미소를 지어보였다.
“起きたのか、ジャン。よく寝ていたな。”
“よう、おはようさん。”
“ハハ、ずいぶん遅いおはようだね。”
미소로 답하며 쭉 기지개를 폈다. 뼈마디가 뚜둑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목을 좌우로 흔들던 중, 문득 루키노의 손에 들려있던 종이가 머릿속에 걸렸다. 자기전에 만년필로 글쓰기 연습을 했던 종이→연습하면서 썼던 글자들→처음에는 이름만 쓰다가..→??!! 까지 떠올린 나는 어떤 '사실'을 깨닿고 나도 모르게
“えっ???!!! アンタそれ読んだのかよ??”
목소리를 높였다. 루키노는 여전히 미소를 띄운채, 무슨 말이냐는 듯 일부러 어깨를 크게 으쓱였다.
―あのヤロウ、絶対見てる!!! チクショウ、しら切りやがって!!!
종이에 적었던 가지가지의 문장들이 하나씩 머릿속에 떠오르며 점점 뺨이 뜨겁게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루키노를 노려보던 시선 조차 부끄러워져서 고개를 휙 돌려버렸다. 양손으로 머리를 부여잡고 책상밑으로라도 기어들어가고 싶은 기분이었다.
―俺のバカバカバカバカばか馬鹿!! なんであんなの書いちゃったんだ!!!
처음에는 내 이름과 루키노의 이름을 번갈아서 적다가, 점점 만년필이 손에 익숙해지니 신이 나서 '이것저것' 적다보니ㅡ주로 루키노에 관한 것들이었을거다ㅡ나도 모르게 감상적이게 되어버려서...
―恥ずかしい…
이 난관(?)을 어떻게 헤쳐나갈까 고민에 빠져있는 나를 아무말 없이 바라보던 그가 입을 열었다.
“ジャン、こっち来い。”
“え?”
반사적으로 소리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가 황급히 다시 시선을 피했다. 빨갛게 상기되어있을게 분명한 얼굴을 보여주는 건 역시 싫었다. 우물쭈물하는 내게 그는 부드럽게, 하지만 또박또박하게 말했다.
“ほら、ジャン。早くこっちオイデ。”
“……っ…”
루키노의 목소리에는 거역할 수 없는 무언가가 있다. 할 수 없이 시선은 여전히 딴곳을 향한채 미적미적 걸음을 옮겼다. 그와중에도 무슨 말을 어떻게 꺼내야할지 머리를 굴려보았지만 좀처럼 해답이 보이지 않는다. 밍기적거리는 내가 답답했는지 짧게 혀차는 소리가 들리는가 싶더니,
“う、うわわっ!!!”
갑자기 다가온 커다란 손이 내 한쪽 팔을 잡아 확 끌어당겼다. 강한 힘에 이끌려 순식간에 카우치앞에 도달했지만 끌려오다시피 하는 바람에 발을 헛디뎠다. 앉아 있는 루키노쪽으로 몸이 급히 기울어졌지만, 넓고 다부진 가슴이 여유롭게 받아준다. 화악 다가온 향수의 향기와 거기에 미미하게 섞여있는 체취가 후각을 통해 몸속 깊숙한 곳에서 반응을 일으킨다. 화악 달아오르는 느낌에 급히 상체를 일으키려고 했지만 금새 그의 팔안에 갖혀버렸다. 심장 박동 소리 마져 들릴만큼 가까운 거리가 안절부절 못하게 만든다. 혹자는 이제와서 뭘 새삼스럽게.. 라고 할지 몰라도, 지금 내 심리 상황이 상황인 만큼 어쩔수 없다.
“ちょっと、ルキーノ、放せってば。”
루키노는 빠져나오려고 바둥대는 내게는 전혀 개의치 않고 허리에 팔을 둘러 끌어당기더니 내 가슴께에 얼굴을 묻었다. 얇은 셔츠넘어로 느껴지는 그의 숨결이 간지럽다. 가슴에 전해지는 기분좋은 체온이 여러 감정이 뒤섞여 혼란스러운 마음을 다독여주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나는 가볍게 심호흡을 했다.
“な、ルキーノ。あれ…あの紙に書かれたのは全部その、うそ、だから忘れてよ。”
“……”
겨우 한다는 말이 그거냐! 며 나는 속으로 스스로를 경멸했고, 그는 아무런 대꾸 없이, 다만 허리를 안고 있는 팔에 조금 힘을 더할 뿐이었다. 그렇게 잠시동안 침묵. 이윽고 그가 입을 열었을 때, 내 등은 조금 땀에 젖어있었다.
“前、お前に言ったよな。もっとゆっくり進んでもいいんじゃないかって。”
“あ、う、うん。”
“だからさ、俺にももうすこし時間をくれないか。”
“ルキーノ……。”
그의 목소리가 조금 갈라졌다. 그런 그에게 왠지 미안한 마음이 들어 상체를 낮추어 그의 목에 양팔을 둘러 살포시 끌어안았다. 따뜻한 체온과 함께 그의 숨소리가 귓가를 간지럽혔다. 루키노의 표정을 볼 자신이 없어 손으로 그의 뺨을 더듬어 눈을 감은채 입술을 포개었다. 입술을 살짝 핥자, 금새 입술이 열려 내 혀를 받아들인다. 내쪽에서 먼저 키스를 해본 적이 별로 없는 탓에 늘 루키노가 내게 하는 대로 흉내를 내보려고 했지만 역시 미지의 영역(?)에 걸음을 내딛는 것은 쉽지 않았다. 그의 속으로 들어가긴 했지만 어떻게 움직여야 좋을지 망설이고 있는는 나를 느꼈는지 살짝 웃는 듯 하더니 자신의 혀를 움직여 얽어맨다. 강하게 빨아대는 통에 조금 호흡하기 힘들었지만, 순순히 그의 움직임에 모든 것을 맡겼다. 심장박동이 빨라지며 온몸이 녹아버릴듯 뜨거워졌다. 노을에 붉게 물든 집무실에서 이런 행위를 하고 있다는 배덕감이 더욱 몸을 달아오르게 한다.
숨이 턱까지 차올랐을때 루키노의 입술이 은색실을 만들며 천천히 떨어졌다. 목으로 흘러내린 투명한 타액을 핥아올리는 느낌이 간지러워 나지막하게 웃으며 말했다.
“待ってるよ。”
“うん?”
“待っててあげる。でもその間に他にヤツに取られちゃうかも知れないけど?”
“ハハ。それは注意しないと。首輪でもはめようか?それともどっかの塔に監禁する手もあるな。”
“言ってろ、ボケ。”
키득키득 웃으며 다시 그의 입술에 가볍게 입을 맞추었다. 그런 나를 루키노는 강하게, 하지만 부드럽게 안아주었다. 오감으로 느껴지는 그의 체온이, 체취가, 그의 존재가 너무나도 소중해서, 목까지 올라온 '말'을 겨우 삼키며 그의 목에 얼굴을 묻었다. 소리 없이 마음속으로 되뇌이며
―愛してるよ、ルキーノ
.
.
「それにしても本当によく寝ていたな」
「そ、それは、アんたが遅いから寝ちまったんだろうが...」
「ハハ。じゃ、今夜は徹夜でやってもいいよな?」
「なっ、ダメだ!徹夜は...その、か、体に悪い!」
「今日くらいいいだろう」
「よくも’今日くらい’って言えるよな。このケダモノが!」
「お姫様はそのケダモノが好きなんだろう?」
「う、うるせっ!」
―愛してる
今にも言ってしまいそうなこの言葉...でも言わない。
アンタが言ってくれるまでは。だから待ってやるよ。
―愛してる
まだお前に言えない言葉。
それを言ってしまうとお前もまた俺の傍から居なくなるんじゃないかって怯えている弱い自分がいる。
いつか一千輪の赤い薔薇の束を持って堂々とお前に言えるその日まで、ずっとこの腕の中に居てく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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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옛적에 썼던 썰 백업.
1-2 왜 쓰다 말았어?? 과거의 나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