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츠이는 현관문 밖에 서있는 남자 아이를 내려다보며 혼란에 빠져있었다.  아이에게서 건네받은 손에 쥔 편지지ㅡ라고하기엔 그냥 공책을 쭉 찢은 것이었지만ㅡ를 꾹 움켜쥐었다. 
미츠이를 올려다보는 갈색의 곱슬머리의 그 아이는 어딘가 불안함을 품은 뚱한 표정으로 마주보다가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가방끈을 움켜쥔 작은 손이 가늘게 떨리는 것이 보였다. 눈치가 빠른 아이구나. 약간의 죄책감과 계속 여기 세워두는 것도 뭐하기도 해서 걸음을 옆으로 옮겨 비켜서며 안으로 들어오라는 제스쳐를 했다. 

[그...저기. 일단 안으로 들어올래?]
[......감사합니다]

아이는 꾸벅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고는 손에 든 작은 캐리어를 현관 한켠에 세워두고 신발을 벗어 가지런히 정리하고 집 안으로 들어갔다.  
작은 뒷모습을 보며 미츠이는 꾸깃해진 종이를 다시 들여다보았다.

『같이 살던 여자가 버리고 간 앤데 니가 좀 키워주라』

볼펜으로 갈긴 한 줄의 메세지에 너무 많은 것이 담겨있었다. 같이 살던 여자? 이 전언을 보낸 인간은 이 메세지를 받기 전까지 미츠이의 연인이었다. 평소에도 미츠이는 똥차 컬렉터라고 불려왔던 터라 그 인간이 쓰레기 라는건 그닥 놀랍지도 않았지만 이 정도 일줄은 상상도 못했다. 양다리도 모자라 자식을 유기까지해? 이런 동물 욕을 갖다붙이기에도 동물한테 미안해야할 새끼를 봤나. 종이를 갈갈이 찢어버리려다가 아이 눈도 있고 해서 참았다. 속에서 끌어오르는 불길도 일단 집어삼키며 거실 입구에 서서 두리번 거리는 아이에게 다가갔다. 웃으며 말했다.

[너 이름이 뭐니?]
[미야기...료타요]
[그렇구나. 그럼 미야기 저 소파에 앉아 있을래? 난 잠깐 전화 한 통만 하고 올게]
[네]

미야기가 말한대로 소파에 가서 앉는 것을 보며 미츠이는 2층으로 올라갔다. 손님용 방으로 들어가 문을 닫고 핸드폰을 열어 단축키를 눌렀다. 몇 번 신호음이 가더니 저쪽에서 전화를 받았다. 

[미츠이냐? 애는 잘 도착했지?]
[야이 미친 새끼야!!!! 이게 대체 뭔 개소리야??!]
[걔가 메모 안주든?]
[시발새끼야 니 자식이잖아! 인간이면 끝까지 책임져야지!! 그러고도 니가 인간이냐???]
[내 자식 아니고 걔 애미년이 도망가면서 버리고 간거야~ 너네집 부자잖아. 불쌍하다 생각하고 키워. 아니면 너도 걔 고아원에다가 버리든가? 암튼 나 바쁘니까 끊는다]
[야!!!! 잠깐 뭘 끊어?!  야!!!!]

끊어진 폰에다 대고 온갓 욕을 퍼붓다가 씩씩대며 침대에 주저앉았다. 벼락맞아 죽을 것들. 저 어린 애한테 대체 무슨 짓을...어금니를 꽉 깨물며 분노에 떨리는 손을 꾹 움켜쥐었다. 오늘 처음 본 아이때문에 이렇게까지 화를 내는 것도 좀 오버인가? 하는 생각도 잠깐 들었지만 아니 이건 인간으로서 당연히 느낄 수 있는 정당한 분노다! 라고 결론지었다.
미츠이는 짧은 머리를 복복 긁으며 앞으로 어떻게 해야할지 고민에 빠졌다. 어차피 남은 방도 몇 개있고 한 명 더 들어와사는건 큰 문제는 아니었지만 저 어린애를 제대로 케어할 수 있을까? 아직 어린데 그래도 생판 남보다는 쓰레기같은 부모라도 곁에 있는게 저 아이에게 좋은게 아닐까? 사회복지과?같은데 연락해야하나?
이제 25세인, 심지어 게이인 미츠이에게 육아는 완전히 미지의 세계였다. 하아아ㅡ단전에서부터 올라오는 한숨을 길게 내뱉으며 손바닥으로 얼굴을 수차례 쓸었다.
일단은. 저 아이 미야기랑 얘기를 해보자.

푹신푹신하게 하체를 감싸는 소파의 감촉이 신기해서 미야기는 엉덩이를 들썩이며 넓은 거실을 둘러보았다. 난생 처음보는 대형TV와 커다란 스피커, 바닥에는 보드라운 러그가 깔려있는 거실은 아이가 봐도 부잣집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공기에서도 뭔가 좋은 향기가 나는 것 같았다.
이 집 주인을 떠올렸다. 현관문을 열고 나온 남자를 처음 봤을 때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잘생겼다.. 였다. 그다지 긴 인생
을 살아온 건 아니지만 지금까지 본 사람들 중에 제일 잘생긴 사람이었다. 하지만 처음 마주쳤을 때의 그 신묘한 얼굴과 쓰레기에게서 받은 메모를 받아들고 확인할 때 잔뜩 구겨지던 표정을 떠올리자 심란해졌는지 움직임을 멈추고 고개를 떨구었다. 역시 나가라고 하는걸까? 이제 정말 갈 곳이 없는데. 결국 고아원으로 가게되는건가. 눈시울이 뜨거워졌지만 입술을 꼭 깨물고 참았다. 이런 일 한 두번도 아니잖아. 아직 울 때가 아냐.

저벅저벅 발소리와 함께 2층에서 미츠이가 내려왔다. 미야기는 조용히 이쪽으로 다가오는 그를 응시했다. 미츠이는 소파에 앉아 있는 미야기 앞에 한 쪽 무릎을 꿇고 앉아 눈높이를 맞추었다. 조금 멋쩍은 표정으로 머뭇거리며 입을 열었다.

[아저씨, 아니 형이...? 아무튼 솔직히 내가 지금 좀 너무 갑작스러워서 많이 당황스러워. 미안해. 일단은 이 집에서 지내도 괜찮겠니? 너네 어머니나 그 쓰ㄹ... 아니 네 양부한테는 어떻게든 다시 연락해볼게]

아무런 잘못도 없는 남자가 이 사태의 관계자 중에서 가장 미안한 얼굴로 쩔쩔매는 모습이 미야기에게는 너무 이상하게 보였다. 낳아놓고 단 한 번도 양육자로서의 책임을 져본적이 없는, 종국에는 새까만 밤에 잘 지내렴 한마디 남겨두고 사라져버린 그 여자나 전언 한장 달랑 손에 들려서 남의 집 대문 앞에 세워둔 그 쓰레기ㅡ그 여자랑 그냥 동거만 했을 뿐이니 양부도 아니었다ㅡ나, 그 전에 거쳐간 그 여자의 남자들 그 누구 하나 이런 표정을 보여준 적이 없었으니까. 작은 가슴 속에 따뜻한 온기가 희미하게 피어났다. 이 사람의 손을 잡고 싶었다.
미야기는 고개를 푹 숙이고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죄송해요. 저 때문에..]
[아냐 넌 아무것도 잘못한게 없어]

고개를 좌우로 저으며 미야기의 말을 부정하는 미츠이는 가슴속에 찡한 아픔을 느꼈다. 아이의 뺨을 한 손으로 쓰다듬으며 말을 이으려 했지만 미야기가 먼저 입을 열었다.

[잘 곳만 주시면 제가 다 할게요. 저 요리도 잘하고 청소도 잘해요. 그러니까 ]

아이는 양 손으로 미츠이의 손을 꼭 움켜쥐었다. 이 사람의 손은 놓치고 싶지 않다는 마음 하나로 자존심이고 뭐고 다 제쳐두고 매달리듯 말했다.

[나 버리지 마세요]

미야기의 말에 미츠이는 울컥해서 작은 몸을 와락 끌어안았다. 참으려고 했지만 조금 눈물이 새어나와버렸다. 무책임한 부모 탓에 이 아이가 받았을 상처를 생각하면 마음이 아팠다. 유복한 가정의 다정한 부모 밑에서 자란 미츠이는 그런 환경을 그저 상상할 수 밖에 없었지만 그것만으로도 눈물샘이 이렇게 쓰린데. 가늘게 들썩이는 어깨를 작은 손이 쓰다듬는 감촉이 너무 슬퍼서 눈물을 멈출 수가 없었다.
몇 번이고 미안하다고 사과하며 흐느껴우는 미츠이에게 미야기는 그저 등을 쓰다듬어주는 것 밖에 할 수 있는게 없었다. 왜 아무 잘 못도 없는 당신이 울면서 미안하다고 하는거야?  좀 의아했지만 그것보다 오늘 처음 본 정체모를 아이를 위해ㅡ설령 그게 동정심이라 하더라도ㅡ눈물을 흘릴 수 있다는게 신기하고 고마웠다. 날 위해 눈물을 흘려준 사람은 이 남자가 처음이었다. 그렇게 생각하자 콧날이 시큰해졌지만 미야기는 울지 않았다. 이런 일로 울기엔 그는 너무 많은 일을 겪어왔고 눈물로는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사람들은 우는 아이를 좋아하지 않는다.

[미안. 내가 어른인데 니가 더 어른같다, 야]

겨우 울음을 그친 미츠이는 약간 잠긴 목소리로 쑥스러운 듯 웃으며 제 뒷머리를 긁적거렸다. 미야기는 아니에요 라며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미츠이는 작게 헛기침을 하며 말을 이었다.

[우리 먼저 호칭 정리를 하자. 미야기 넌 몇살이야?]

그러곤 잠깐 미야기를 훑어보더니,

[초등학생?]
[...중1이에요..!]

조금 발끈해서 한 쪽 눈썹을 씰룩이며 저도모르게 목소리를 높였다. 아뿔싸 했다. 하지만 그런 미야기의 모습이 귀여웠는지 미츠이는 살풋 웃음을 흘렸다. 
좀전까지 울더니 지금은 이렇게 맑게 웃고 있고 참 바쁜 사람이네, 미야기는 속으로 피식 웃었다.

[미안미안. 내가 그런걸 잘 볼 줄 몰라서]

미야기의 머리를 슥슥 쓰다듬으며 말을 이었다.

[그럼 형이나 삼촌...? 뭐 니가 원한다면 이름도 상관없고]
[이름 아직 못들었어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미야기를 쳐다보던 미츠이의 입에서 아!! 하는 탄성이 흘러나왔다.

[그러고보니 내 이름이 아직이었네. 난 미츠이 히사시라고해. 25살.]
[미츠이 히사시...]

미츠이의 이름을 작게 되뇌이며 미야기는 고개를 끄덕였다.

[형..이라고 불러도 되요?]
[그래!]

미츠이는 나 외동이었는데 오늘 동생이 생겼네? 라며 생글생글 웃었다. 여름 햇살같은 미소에 미야기의 심장이 쿠쿵 이상한 소리를 냈다. 제 가슴과 미츠이의 얼굴을 번갈아 쳐다보며 미야기는 고개를 살짝 갸웃했다.

[앞으로 잘 부탁한다, 미야기]

반짝이는 미소를 보며 가슴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심장 소리가 이렇게 크게 들린 적은 처음이었다.
미야기 료타 13세 여름 생애 처음으로 아름다움을 알았다.







◇◆◇◆◇◆◇

# 인생 3회차 미야기 료타(13)X인생 초회차 미츠이 히사시(25)
# 여기 미야기 모친은 카오루상이 아닙니다(매우 중요)
# 미츠이네 부자 설정. 준재벌 쯤 되면 좋을거같다. 일본 3대 재벌 미츠이 그룹....까진 아니더라도 ㅋㅋ
#  똥차(폐차?) 컬렉터 설정 미츠이랑 넘 잘 어울리는거 같음!
# 미야기  속으로 この人チョロい 라고 좀 생각할지도<<   산전 수전 다 겪어온 미야기 소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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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차게 거부당했다.
살을 찢는 아픔보다 그의 표정이 더 아팠다.
산산이 부서진 짝사랑을 주워담으며 업보가 돌아온거라며 혼자 울면서 웃었다.

.....................



[후아암~]

양호열은 나른하게 하품을 하며 복도를 걸었다. 오늘은 웬일로 일찍 잠이 깨서 다시 잠을 청하기도 뭐하고 해서 그대로 학교로 나온 것이었다. 이른 아침의 학교는 고요했다. 옥상에서 한 대 태울까 하고 손에 든 담배갑을 주머니에 찔러넣고 복도를 어슬렁 어슬렁 걷고 있는데 시선 끝에 낯익은 인물이 비쳤다. ...정대만...? 저긴 보건실인데 앞에 서서 뭐하는 거지? 저벅저벅 보건실 앞에서 멍하게 서있는 인물에게 다가갔다.

[대만군? 여기서 뭐... 우왁 팔 왜 이래요?! 피 나잖아!]

하얀 팔에 그어진 상처에서 선혈이 가느다랗게 흘러내려 팔과 손을 붉게 물들이고 있었다. 정대만은 그제서야 자신의 손을 가만히 내려다보다가 호열에게 시선을 향했다. 멍하던 눈에 빛이 돌아오며 눈 앞의 인물을 인식한 듯 했다.

[..........어...? 아 양호열. 여기서 뭐하냐?]
[여기서 뭐하냐? 가 아니라! 지금 당신 어떤 상태인지 알고는 있는거에요?]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으로 바라보는 호열을 보며 대만은 눈을 깜빡이다가 아, 이거. 하고 다친 팔을 들었다.

[그냥 긁힌거야. 근데 보건실 문이 잠겨있어서..]

그야 이런 이른 아침에 문이 열려있을리가 없지. 선생들 출근 시간까지 아직 시간이 꽤 남았다고.
오늘의 정대만은 어딘가 좀 이상하다고 호열은 생각했다. 부실에 구급상자 정도는 있을텐데, 왜 굳이 여기까지 와서 잠긴 문 앞에서 멍때리고 있는거지? 부실에 있지못할 사정이라도 있나? 여러 의문이 떠올랐지만 일단 눈 앞에 보이는 저 상처부터 어떻게 하자 싶어서 보건실 문 앞에 섰다.
얇팍한 가방을 보건실 문 유리창에 대고 한 쪽 구석을 팔꿈치로 강하게 가격하자 간단하게 깨졌다.

[?!야 그걸 깨면 어떡해?! 그러다가 걸리면..]
[우리 밖에 없는데 누구한테 걸려요? 그보다 가까이 오지마요. 또 다치면 큰 일이니까]

호열은 깨진 유리 안으로 조심스레 한 쪽 팔을 집어넣어 보건실 문의 잠금 장치를 열었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며 대만에게 말했다.

[들어올 때 유리 조심해요]
[응]

일단 문을 닫고 대만의 손을 잡고 개수대로 가서 상처 부위를 흐르는 물에 씻었다. 옅은 피빛이 섞인 물이 개수구로 흘러내려가는걸 보고 있자니 절로 미간이 좁혀졌다. 그냥 긁힌걸로 이렇게 까지 피가 난다고? 싶었는데 씻어내고보니 꽤 상처가 깊어보였다. 아침 댓바람부터 대체 뭘 하고 다녔길래. 좀 신경쓰였지만 딱히 묻지는 않았다.  팔 안쪽의 희고 여린 피부를 가르는 상처가 유난히 붉어서 호열은 저도 모르게 마른침을 꼴깍 삼켰다. 무슨 운동 선수 피부가 이렇게 하얗냐. 

[거기 앉아있어봐요]

침상에 앉혀놓고 약이랑 붕대를 찾으러 발걸음을 떼려는데 뒤에서 목소리가 붙잡았다. 

[문 열어줘서 고마워. 나머지는 내가 알아서 할테니 넌 가봐라. 유리도 내가 깼다고 하면 되고.]

뭐라는거지, 이 사람? 순간 짜증이 치밀어 표정 필터링없이 날 것 그대로의 얼굴로 뒤돌아 내려다보았다. 흠칫 하고 표정이 굳어버리는 모양이 참 투명하다 싶었다. 절대 거짓말은 못 할, 하더라도 금세 탄로날 타입이다. 농구부를 습격했던 날의 일을 아직 마음에 두고 있는 거겠지. 하긴 그 날 좀 사정 없이 패긴 했으니까. 딱히 겁을 줄 생각은 없었기에 바로 웃는 얼굴을 만들었다.  

[내가 시작한거니 그냥 마무리까지 하게 해줄래요?]

그냥 닥치고 거기 가만히 앉아있기나 해 를 최대한 순화해서 얘기했다. [아, 알았어. 그렇게 화낼건 없잖아] 입 안에서 웅얼웅얼 말하며 잠자코 앉아 있다. 

[화내긴 누가 화를 냈다고 그래요]
[....너 정색 하면 무섭다고...] 

입술을 삐쭉이며 투덜대는 꼴이 저게 어딜 봐서 2살이나 많은 선배인가 싶다. 호열은 피식 웃으며 소독약과 연고등을 챙겨서 침상 앞 간이 의자에 앉았다. 

[어디 한 번 봐요]

정대만은 얌전히 팔을 내밀었다. 꿰매야하는거 아닌가 싶었지만 지금은 어쩔 수 없으니 일단 소독약병을 열었다. 소독약의 쎄한 냄새가 퍼졌다.

[응급 처치 정도니까 나중에 보건 선생한테 제대로 진찰 받아요]
[.......어...엉]

또 멍하게 있다가 뒤늦게야 대답을 한다. 무슨 생각을 그리 하는지.
호열은 소독약으로 듬뿍 적신 위생솜으로 상처 끄트머리를 꾹 눌렀다. 그냥 좀 짓궂게 굴고 싶어졌다. [아악 야 아파!!] 소리를 지르며 팔을 빼려는걸 손목을 꽉 잡아 저지했다. 눈꼬리에 눈물 방울을 달고 노려보는게 제법 귀엽다. 자신보다 덩치 큰 남자 사람에게 붙여도 될 수식어인가 싶긴하지만.

[엄살부리기는]
[진짜 아프다고!!]
[그렇게 아프면 울어요. 미련하게 참지말고. 우리 아직 어른 아니잖아요]
[......]

아무런 대꾸도 없었다. 묵묵히 소독약을 발라가는데 훌쩍이는 소리가 들렸다. 못들은 척 소독을 끝내고 연고를 조심스레 그 위에 발랐다. 가끔 바지에 동그란 짙은 얼룩이 생기는게 보였다. 흐트러진 숨소리가 보건실을 잔잔하게 울렸다.
그냥 참지 않았으면 했다. 이 사람은 제대로 참는 방법을 모르거든. 무작정 억누르고 덮어버리는게 참는 것이 아닌데. 적절히 소화해내고 주기적으로 환기, 발산을 해줘야하는데 아마 양아치 시절에도 전혀 발산을 하지 못했을거다. 그러니까 그렇게 주먹이 약하지. 그러다가 폭발하면 결국은 자기 자신은 물론 주변 사람들에까지 그 파편이 튀어 상처를 입히고 마는거다. 그리고 그 업보가 본인에게 돌아오는 거지. 정대만의 경우는 인복은 있어서 그 일로 누군가 원한을 품은 사람은 없어보이지만. 어느쪽이냐면 스스로 업보를 짊어지고 있는 걸로 보였다. 

양호열은 가볍게 머리를 좌우로 털어 머릿속의 생각을 흐트려버리고 붕대를 감기 시작했다. 남의 인생 분석할 여유가 어딨어, 내 앞가림 하기도 벅찬데.
여기저기서 싸움을 하다보면 다치는 일도 허다해서 상처 처치는 익숙했다. 붕대 고정까지 야무지게 마무리하고 [자, 다 됐어요] 하고 손목을 잡고 있던 손을 풀었다.

[고맙다]

눈가는 빨갰지만 어딘가 좀 풀어진 표정으로 감사 인사를 건네는 두 살 연상 선배에게 호열은 어깨를 으쓱해보이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괜히 유리창 내가 깼느니 나서지나 말아요. 나나 대만군이나 이 이상 학교에 찍혀서 좋을거 없잖아. 그냥 두면 학교에서 알아서 처리하겠죠]

대만이 고개를 끄덕이는 걸 보고 자리를 정리 하고 보건실을 나왔다. 뒤따라 나오는 대만에게 한 손을 들어보이고는 발걸음을 옮기려는 찰나.

[양호열 너도 내가 싫냐?]

호열은 천천히 뒤돌아서 목소리의 주인을 응시 했다. 담담하던 표정이 시선을 마주치자 살짝 흔들렸다. 
너'도' 라는 구절이 좀 신경 쓰였지만 굳이 캐묻지는 않았다. 아마 저 상처랑 관련되어있겠거니, 그냥 그렇게 가볍게 넘겨짚고 넘어갔다. 어차피 남의 일이다. 가능한한 귀찮은 일에는 관여하지 않는게 상책. 그것이 호열이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체득한 깨달음 중 하나였다. 뭐 요 근래 들어서는 어쩔수 없이 휘말려드는 일도 꽤 있었지만. 그렇게 만든 장본인에게 이런 질문을 받다니 이 상황이 뭔가 우스웠다. 
정대만이라는 인간에 대한 호불호를 묻는다면 어느쪽도 아니었다, 아마도. 농구부를 습격했던 그 날도, 물론 처음에는 혐오에 가까운 감정을 느꼈지만 친구, 적, 스승, 그 외 제3자 모두가 보는 앞에서 울면서 무너져서 농구가 하고 싶다는 그를 봤을 땐, 그저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그런 상황에서 자신의 약한 부분을 가감없이 드러내고 솔직해질 수 있다는 게. 호열은 난 절대 죽었다 깨어나도 저렇게는 못할 거라고 속으로 혀를 찼다. 호감은 아니었지만 정대만이라는 인간을 다시 보는 계기는 되었다.  그 날 이후 머리를 짧게 친 그는 자신이 선언한대로 농구에 모든 것을 다 바친 사람처럼 매진하였다. 농구를 하는 그는 세상의 모든 것을 가진 것 마냥 즐거워보였고 반짝 반짝 빛났다. 이런 말 하면 본인은 화내겠지만 예쁘다고 생각했다. 언젠가부터 그런 그를 눈으로 쫒게 되었다. 그러다가 그 날, 북산팀을 응원하다가 그만 그 말이 툭 튀어나오고 말았다. 

『今は好きさ!』

저도 모르게 나와버린 말에 내심 당황했지만 다른 녀석들도 같이 호응해준 덕분에 분위기에 대충 묻어갔다. 가슴이 빠르게 뛰었지만 내색하지 않았다. 속마음을 드러내지 않는 것은 자신있었으니까. 왜 그런 말이 튀어나왔는지는 잠깐 생각하다가 관두었다. 성가신 일은 어떻게든 피하고 싶었다. 소중한 것은 지금 곁에 있는 녀석들로 충분하다, 고 자신을 납득시켰다.

호열은 싱긋 웃으며 말했다. 

[今は好きさ(지금은 좋아해요)]

정대만은 잠깐 놀란 표정을 짓더니 뭔가 떠올렸는지 어깨를 들썩이며 웃기 시작했다. 

[푸흡, 그래 고맙다]

이 사람은 참 예쁘게 웃는구나.

[고마우면 밥이나 사요]

저도 모르게 툭 나와버린 말에 심장이 덜커덩 했다. 주머니 속 담배갑을 꾹 움켜쥐었다. 말려들고 말았다.

[그래. 그러자. 시간 날 때 얘기해라]

생글 웃어보이고는 뒤돌아 멀어져가는 뒷모습을 바라보며 호열은 마른 세수를 했다. 뭐지 이 여우에 홀린듯 한 기분은. 저 멀리 작아진 뒷모습을 힐끔 쳐다보고는 계단을 향했다. 
담배가 너무 고프다.






.....................

# 今は好きさday 에 올리고 싶었는데 대지각😂
# 밥 같이 먹고 하다보면 커플도 되고 그러는거지!
태섭: 야 뭐라고?!
# 감사합니다(⁠ ⁠ꈍ⁠ᴗ⁠ꈍ⁠)


Posted by Bernard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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